[신인섭 칼럼] 종교개혁은 옥외광고로부터 펴졌다

[신인섭 칼럼] 종교개혁은 옥외광고로부터 펴졌다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1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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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지금으로부터 505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현재 달력으로는 11월 10일) 독일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를 상상한 그림이 있다. 그의 종교개혁 95조 반박문이 맨 먼저 발표된 곳은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의 정문이었다.

교회 정문에 95조 반박문을 못 박는 루터 마르틴 루터. 벨기에 작가 페르디난드 파웰(Ferdinand Pauwels)의 그림.
교회 정문에 95조 반박문을 못 박는 루터 마르틴 루터. 벨기에 작가 페르디난드 파웰(Ferdinand Pauwels)의 그림.

1483년에 태어난 루터는 처음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학을 공부했으나 중단하고 수도회에 들어가 신학 공부를 했다. 1512년 29세에 신학박사가 되어 모교 대학교수가 되었는데 그 무렵 로마 교황청은 산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 신축 기금 마련을 위해 면벌부(면죄부)를 판매하고 있었다. 면죄부란 죄를 용서하고 벌을 면제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고 발행해 주는 증명서이다. 1500년대 초 독일 마인츠 대주교의 면죄부 판매원의 과대 선전은 대단했는데 “단순히 면죄부를 산 사람만의 죄가 아니라 그의 부모 친지의 영혼조차 면죄부를 산 돈이 금고에 떨어져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옥으로부터 튀어나온다”라는 따위였다.

교회 안에서 면죄부를 파는 모습
교회 안에서 면죄부를 파는 모습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내붙였다. 교황은 루터에게 반박문을 철거하라고 요청했으나 그는 거절했고 교황이 보낸 파문장까지 불태워 버렸다. 루터는 파문되었다. 그리고 루터는 비텐베르크에 새로운 개혁교회를 만들었다.

독일은 루터를 지지하는 루터파와 교황을 지지하는 교황파로 분열되어 대립하게 되었고,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루터의 반박문이 재빨리 유럽 전체에 퍼진 것은 1439년에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움직이는 인쇄 기술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루터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 6가지였다.

1. 회개의 삶을 강조하고 고해성사 즉 사제가 집행하는 고백과 속죄는 불필요하다.

2. 면죄부는 죄책감을 제거할 수 없으며 그 일은 하나님이 자신의 수중에 보전하셨다.

3. 죄에 대한 처벌을 교황이 사면할 수 없으며 그 사면권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4. 면죄부는 연옥에 있는 영혼에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교회가 부과한 처벌은 오직 산 자에게만 적용된다. 사망이 그러한 처벌을 취소시킨다.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 교황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기도에 의할 뿐이다.

5. 참으로 회개하는 신자라면 면죄부와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를 받은 것이며 면죄부는 필요 없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참된 회개를 요구하신다.

6. 사람을 낚는 그물인 공로의 보화는 필요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 십자가를 외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

95개조 반박문
95개조 반박문

루터가 태어나기 몇 해 전인 1477년에 영국의 윌리엄 캑스턴 (William Caxton)은 자기가 쓴 책 “설츠베리 파이 (The Pyes of Salisbury)" 판매를 위해 만든 전단이 있다. 이 책 내용은 교회 의식에 관한 것인데 지금 영국 최초의 인쇄 광고물이라 알려져 있다. 크기는 가로 세로가 5 1/4인치(13.3cm)에 3인치 (7.6cm)이다. 캑스턴은 성당에 책방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 책 판촉용으로 이 전단을 만들었다. (여전히 쉽지는 않으나 현대 영어로 고친 전단 내용은 Google에서 ”Caxton Prints the Frist Book Advertisement in the English Language"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 최초의 인쇄 광고물이라는 "설츠베리 파이 (Pyes of the Salisbury)"
영국 최초의 인쇄 광고물이라는 "설츠베리 파이 (Pyes of the Salisbury)"

따지고 보면 캑스턴의 전단도 역시 일종의 옥외광고였다. 하기야 서양광고사에 자주 언급되는 이집트 조각 “로제타 돌(Rosetta Stone)”도 내용을 따져 보면, 이집트의 신적 존재 파라오왕에 대한 칭송이었으니, 종교와 관련된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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