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지옥으로 오세요...영화 ‘컴온 컴온’

행복한 지옥으로 오세요...영화 ‘컴온 컴온’

  • 안소현
  • 승인 2022.08.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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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변태. 친구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새해 첫날이면 심플한 디자인의 다이어리를 사서, 그 해의, 그 달의, 그 날의 계획으로 빼곡하게 채웠다. 매일 아침이면 오늘의 해야 할 일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끝낼 때마다 줄을 그었다. 깨끗하게 줄이 그어진 그날의 리스트를 보면 그보다 뿌듯할 수 없었다. 비록 할 일 하나하나가 별 볼일 없는 잡무라 해도 줄이 그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어떤 포만감 같은 것을 느꼈다. 

자타공인 계획변태답게 나는 임신 중에도 계획을 세웠다. 일명, 육아휴직 버킷리스트. 육아휴직은 엄연히 ‘육아’를 하며 ‘휴직’을 하라는 의미이건만, 육아만 하며 보내지 않겠다는 거만한 욕심으로 다이어리 가득히 나의 계획을 적어나갔다. 아이를 수유하면서는 영어 공부를 하자. 어차피 수유하는 동안은 할 것도 없으니 영어 단어를 외우면 딱 이겠지. 신생아는 잠을 많이 잔다니까 아이가 잘 때는 틈틈이 글을 써야지. 혹시 모르잖아? 육아휴직 끝날 때쯤 책 한 권이 완성되어있을지. 아기가 노는 동안 나는 옆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좋겠어. 그러면 임신 중 찐 살이 다 빠지겠지. 계획은 완벽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뱃속에 있을 때가 좋을 때야. 나오면 끝이야.” 주변에서 수많은 출산 선배들이 나에게 경고했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뱃속에 몇 십 센티 생명체가 자라는 것만으로 나의 내장기관과 호르몬과 허리뼈와 골반이 이토록 시위를 해대는데 뱃속에 있는 게 좋은 거라고?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고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완전한 무질서를 맞닥뜨려야 했다. 계획을 세우는 건 무의미했다. 아이는 마치 나의 계획에 훼방을 놓기 위해 작정하고 나온 존재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처음 경험하는 무질서였다. 도대체 계획한 대로 예상한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디 계획뿐일까.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다. 제 시간에 잠을 자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먹고 싶을 때 밥을 먹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가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가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대체 왜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또 다른 무질서의 세계가 열렸다. 아이는 끊임없이 내가 믿던 것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건 왜 그래? 왜 안 돼? 왜 해야 돼? 아이가 말간 눈빛으로 물어올 때마다 나는 너무 당연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대답해야했다. 그러게, 그게 왜 그랬던 거지? 왜 바람이 불면 시원하고, 왜 나는 회사에 가야하는 거지? 왜 맛있는 건 자꾸 먹고 싶지? 왜 하늘나라로 돌아갔다고 하는 거지? 왜 해가 지면 자야하는 거지? 왜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야하고, 왜 지각하면 안 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난 왜 이걸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거지? 5살 꼬맹이가 해맑게 던지는 질문공격으로 내가 공고하게 쌓아온 나의 세계가, 나의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공격은 쉴 틈도 주지 않고 들이닥쳤다. 수많은 질문들이 벽을 넘어 들이쳤고, 방심하는 순간 뒤통수에도 내리꽂혔다. 그렇게 벽은 기어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이제 제법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믿었는데, 어쩌면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세계를 다시 미지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아이를 키우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더 이르지도 더 늦지도 않게, 우리 인생의 딱 중반 즈음에 우리가 아이를 키우게 되는 건 어쩌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영화 ‘컴온 컴온’을 알게 된 건 친한 언니의 추천 덕분이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아이를 키우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이라는 의미심장한 추천사를 남겼는데, 현재 내 인생 최대의 미션이자 최고의 난관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던지라 안볼래야 안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관의 불이 꺼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영화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가 아는 전부는 영화사가 써놓은 줄거리가 다인데, 문제는 그 줄거리가 식상해보였다.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미혼의 삼촌이 친하지 않은 9살 조카를 돌보게 되는 이야기라고? 흔하디흔한 영화 스토리 중 하나 아닌가? 괴팍한 어른이 엉뚱하고 순수한 아이를 만나 서로 투덕거리다가 친구가 되며 변화하는 줄거리의 영화와 드라마를 말해보라면 다섯 편은 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영화에 괴팍한 어른 같은 건 없었다. 심지어 조니는 제시의 돌발행동에 순간 감정적으로 대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를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좀처럼 보기 드문 성숙한 어른이었다. 매일 만 4세와 싸우다 화내다 소리까지 지르는 내가 괴팍하다면 더 괴팍한 어른이었다. 

괴팍과는 거리가 먼 조니와 엉뚱하지만 한편으로 성숙한 제시가 만났으니, 영화는 클리셰와 다르게 극적인 사건이나 놀라운 반전 없이 무난하게 흘러간다. 중간 중간 조니가 인터뷰하는 아이들 덕분에 다큐멘터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갈등이 있다면, 조니가 미국 도시들을 다니며 아이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제시를 돌봐야 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 정도는 워킹맘에게 일상일 뿐. 어른의 일을 방해나 안하면 다행이지만 아이들이 방해를 안 할 리가 없지. 제시는 조니의 기나긴 출장에 동행하며 해맑은 웃음과 함께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해놓는다. 그리고 조니는 이를 맞닥뜨리며 감정적으로 대응도 했다가, 치열하게 설득도 했다가,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가기도 한다. 그 모든 순간들은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영화 속에서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조니는 말한다. “녹음을 한다는 건 평범한 것을 영원하게 만드는 일이야.” 이 영화가 꼭 그렇다. 평범한 순간들을 정갈하게 모아 특별함을 만든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어쩌면 마찬가지다. 평범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가끔 행복이라는 감정을 만질 수 있게 해준다. 나란히 누운 어느 밤, 아이가 작은 입으로 “엄마 사랑해요” 말할 때 나는 확신한다. 행복은 때론 만질 수 있다고. 그렇게 아이들은 여느 밤도 영원히 기억되게 만든다. 정말이지 악마의 재능이다. 

계획한 것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예요.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질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해봐요.

영화 ‘컴온 컴온’을 어떻게 추천하면 좋을까 한참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나도 비슷한 추천사를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상이 심심하고 지루한 분들. 아이를 키우세요. 행복한 지옥이 펼쳐질 겁니다. 만약 아이가 없다면, 이 영화를 만나보세요. 조니와 함께 제시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보세요. 조니에 감정이입하고,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비로소 도착한 겁니다. 웰컴 투 행복한 지옥. 건투를 빌어요.

 


안소현 Wieden and Kennedy Tokyo 카피라이터 

※ 한국광고총연합회 발간 <ADZ> 칼럼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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