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품에서 사회까지 - 디자인 영역의 진화" 슌 이시카와(Shun Ishikawa)

[인터뷰] "제품에서 사회까지 - 디자인 영역의 진화" 슌 이시카와(Shun Ishikawa)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5.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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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슌 이시카와
사진 제공 슌 이시카와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디지털 부문 심사위원 다섯 명이 좌담 형식으로 인상적인 출품작들과 그 의미를 얘기하는 D&AD 페스티벌의 첫 번째 세션이 열렸다. 일본인으로 전자 기업인 파나소닉의 디자이너를 거쳐 영국의 세인트마틴스 디자인 스쿨에서 수학하고, 현재 케시키(KESIKI)사의 파트너로 있는 슌 이시카와(Shun Ishikawa)가 첫 번째로 그가 선정한 작품을 소개했다. 한국의 가정 폭력에 관한 수치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제일기획에서 발의하여 경찰청과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한 ‘똑똑 캠페인’을 소개했다.

"디자인적인 접근으로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았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이 아는 한국 디자이너들과 디자인 회사들을 열거했다. 그는 영국에서 수학한 후에 미국의 유명한 디자인 회사인 아이디오(IDEO)의 일본 법인의 창립 멤버여서 한국 아이디오와도 긴밀하게 협조하며 일했다. 삼성을 주요 고객으로 일을 했고, 21세기 접어들기 전까지 파나소닉은 감히 범접하기도 힘든 존재였다고 하자, ‘그런 시대가 있었지요’라고 하면서 전자와 자동차에서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역전되는 데 디자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외교적 수사 이상의 부러움과 안타까움을 담아, 한국과 일본 기업의 차이를 말했다.

"한국인들의 기질이 유럽 국가로 치면 이태리와 비슷하다고 하잖아요. 다이내믹하고 에너지가 넘치죠.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서 혁신을 이뤄내요. 삼성에 PIT, Process Innovation Team이 있었던 걸 기억합니다. 일본은 기존 과정과 방식을 지키는 데만 충실했어요."

어떤 과정이었을까? 아이디오 시절과 이후의 디자인 회사에서 삼성이나 LG를 비롯한 한국 고객들과도 일을 하는데, 일본 기업 고객과 비교하면 자신들에게 던지는 질문의 기준과 영역이 다르다고 했다.

"일본 기업에서는 어떤 기능을 넣거나, 외양을 변형시켜야 할지, 제품에 한정된 질문과 요구를 했어요. 고객들에게도 현재의 제품에서 불편한 점이나 개선사항들을 묻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사람들의 생활이 그리고 미래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묻더라고요."

소비자로만 사람들을 본 일본 기업에 비하여 훨씬 넓고 멀리 보는 시야로 한국 기업들은 접근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우리 한 제품만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라는 그의 말에 "그래서 나는 일본의 광고 회사인 하쿠호도가 내놓은 단어를 좋아해요"라며 그에게 ‘生活者(생활자)’라는 하쿠호도 총합연구소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개념을 끄집어 말하자, 반색을 하며 "바로 그거에요. 그런데 일본 기업에서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요"라고 한다.

일본인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겸양이 지나친 것이라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안타까움이 짙게 묻어 있기도 했다.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영역은 반대로 넓어지고 있었다. 처음 그가 파나소닉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한 이래 디자인의 정의가 달라지지 않았느냐, 어떻게 진화했느냐고 물었다. ’아주 좋은 질문’이라는 상투적이지만 반가움을 감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디자인 정의와 영역은 세 단계를 거치며 변해왔어요. 처음에는 상품 외형에 치중했죠. 모양(shape)을 더 좋게 하든지, 색상(color)을 더 예쁘게 하는 게 디자이너의 일이었죠. 다음 단계에서는 다른 형태로 비즈니스 하는 방식을 만들죠. 아이튠이나 아이폰이 대표적이에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이전과 다른 체험을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의 문제에 대응하여 해결법을 디자인하는 식으로 진화합니다. 앞서 한국에서 가정 폭력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똑똑 캠페인’이 그런 예입니다. 지방자치단체와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정책을 디자인(policy design)’하여 제시하고 함께 지속가능한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식이죠."

크게 봐서 세 단계의 변화를 거쳐 왔지만, 더욱 강화된 원칙이 있다고 한다. 바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로부터 출발하고, 더 건강하고 나은 미래로 함께 간다는 ‘인간 중심(human-centered)’의 원칙이다. 마케팅을 한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기본으로 갖고 가지 않느냐, 곧 굳이 디자이너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냐 하자 그가 디자이너의 강점을 콕 집어서 말했다. 해결책과 문제가 풀린 미래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보거나 느낄 수 있게 하는 건 확실히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래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스템과 그 변화가 지속되게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현재 디자인의 키워드로 뽑았다.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자신의 회사에서 실현시키는 사례로 ‘P.O.W.’란 약자로 불리는 제도를 말했다. ‘Play on Wednesday’의 약자로, 수요일은 근무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하며 주4일 근무한다고 자랑한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말했다. "나는 POW라고 하면 ‘Prisoner of War’, 포로가 먼저 떠올라요."

그는 D&AD에 심사위원 등으로 2016년 이후 계속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광고제와의 차이를 묻자, ‘공동체(community), ‘교육(education)’, ‘젊음(young)’의 세 가지를 든다. 개막한 후에 심사위원 세션 하나만 보고, 한 시간 동안 세션에 참가한 심사위원 중 하나인 슌 이시카와와 이야기를 나눈 게 다이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세 가지였다.

 

슌은 '착한 경제'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둔 임팩트 및 혁신 디자인 회사인 케시키(KESIKI inc)의 파트너이다. 그는 BCG 디지털 벤처스의 디자인/전략 디자인 책임자이자 IDEO 도쿄의 창립 멤버였다. 디자인 디렉터로서 팀을 이끌고 구축했으며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서 PDD 혁신을 주도했다.

슌은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고위 경영진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타마 예술대학의 크리에이티브 리더십 프로그램의 교수 겸 프로그램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산업 디자이너 출신인 슌은 디자이너 블록, 이탈리아 밀라노 살로네, 굿 디자인 어워드 등 수많은 디자인 상을 수상했으며 도쿄에서 작품을 전시한 바 있다. 굿 디자인 어워드, D&AD 등 여러 디자인 어워드에 참가했다. 그의 저서인 <미래의 일>과 <안녕, 디자인>은 일본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또한 포브스 재팬이 선정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디자이너 39인'에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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