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광고 시각으로 과학 책 읽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광고 시각으로 과학 책 읽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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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아무리 자주 읽고 아무리 큰 존경을 표해도 지나치지 않은 걸작”.

어느 책이기에 이런 찬사를 받았을까. 좀 과하다 싶은데, 이 책이 모든 살아 있는 생물에 이름을 붙이는 분류학의 기초를 놓은 <자연의 체계>라고 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우리가 인간을 학명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하는 속(屬)명과 종(種)명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합쳐 일컫는 게 바로 이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분류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칼 폰 린네(‘린네우스’ 혹은 ‘린나이우스’라고도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가 자기 책을 두고 저렇게 자화자찬했다고 한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윌북 펴냄, 2023) 책에서는 그래서 분류학자 자신과 그 책에 대해 “린나이우스 본인보다 더 열렬한 팬은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이런 속칭 ‘셀프 깔때기’는 광고나 PR의 효과적인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PR에서 다른 이들이 칭찬하도록 하라는 ‘Let them talk’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던가.

한국계 미국인인 저자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 책은 제목 그대로 광고계의 용어로 하면 ‘네이밍(naming)’에 관한 책이다. 작년에 과학 서적으로는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하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영감을 준 책이라고 한다. 린나이우스 다음으로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인물은 진화론이라고 하면 바로 연상되는 찰스 다윈이다. 다윈이 영국 해군의 군함 비글호를 타고 5년여 세계 곳곳을 돌며 채집한 생물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10년 동안 했는데, 어느 곳에 속하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따개비였다. 그래서 다윈은 1846년부터 본격적으로 따개비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윈이 어찌나 따개비 연구에 몰두하고, 온갖 따개비들을 수집하여 집에다 놓고 보관하고 했는지, 자녀 중 하나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집안을 둘러본 후에 이렇게 물었다.

“너희 아버지는 어디서 따개비 연구를 하시는 거야?”

아버지들이라면 모름지기 따개비 연구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다윈과 자녀들의 사이가 좋았는지 자식들이 스스럼없이 이 위대한 학자를 놀리곤 했단다.

“헤엄치기에 좋은 구조인 여섯 쌍의 발, 근사한 한 쌍의 겹눈, 극도로 복잡한 더듬이”

다윈이 따개비를 이렇게 묘사했다고 한다. 이 묘사에 대해 다윈의 자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며 아버지를 놀렸다.

“너무나 광고 문구 같아요.”

이때 다윈의 자녀들 나이가 10살 아래이고, 아무리 시대를 올려 잡아도 1860년 전이다. 그런데 ‘광고 문구 같다’라는 표현이 어린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만큼 그 시절에 이미 광고가 생활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하긴 영국에서 신문광고가 출현한 시기를 16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1835년에 영국 런던 시내 풍경을 그린 작품을 보면 온갖 광고들이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그렇게 ‘광고’라는 단어를 어린이들도 입에 올리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래도 느닷없이, 다윈의 자녀들 입에서 ‘광고’가 입에서 나온 건 놀라웠다.

‘네이밍’에 관한 책이라고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분류, 곧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을 다루고 있고, 그런 사례를 제시한다. 열 가지 종류의 탄산음료를 가지고 분류하라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누군가는 ‘콜라 그룹’, ‘레몬 라임 그룹’, ‘갈색비 콜라’, ‘오렌지 탄산수’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어쨌든 나름의 기준으로 그룹을 나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세분화를 배울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위의 다윈 자녀의 말에서 광고의 역사 한 페이지를 파악하듯 어디서나 약간만 뒤틀면 광고와 마케팅에 접목해 배울 거리가 나온다. 눈만 부릅뜨고 찾고, 다른 것들과 연결해 보려 노력한다면 반전의 실마리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John O. Parry, “A London street scene” (1835)
John O. Parry, “A London street scene” (1835)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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