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는 갈림길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는 갈림길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3.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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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atrick Federi / Unsplash
사진: Patrick Federi / Unsplash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When you come to a fork in the road, take it."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역대 최고 포수로 꼽히며, 명예의 전담 멤버이자 엉뚱하지만, 묘한 의미가 있는 말을 툭 던지는 걸로 유명한 요기 베라가 한 친구에게 자신의 집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동차를 몰고 오는 이에게 “두 갈래 길이 나오거든, 그럼 그걸 타라고” 식으로 말한 거다. 두 갈래 길에서 하나를 정해줘야지, 그냥 타라고 하다니,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사정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대부분 소위 요기 베라 식으로 맞는 듯 틀리는 듯 요상한 걸로 유명한 곧 요기즘이란 말들이 그런 것처럼.

서쪽 김포공항 방향에서 동쪽 잠실 쪽으로 올림픽대로를 타고 한강대교를 지나면 도로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내비게이션에서는 ‘두 갈래로 갈라지나, 나중에 합쳐지니 어느 길을 타도 괜찮다’라는 식의 설명이 나온다. 여기 베라가 말한 갈림길(fork)이 바로 그런 식이었다. 위의 말 다음에 ‘어느 길을 타도 우리 집으로 오는 하이랜드 길로 통하니까 괜찮아’가 잇는다.

여기에 여러 사람의 구구한 해석이 붙는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선택에 맞닥뜨리게 된다. 무서워서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고민만 하다가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어느 길이든 택하면 그 나름에 맞는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내가 보기에 처음 위의 말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요기 베라도 그런 해석을 듣고는, 수용하여 비슷하게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일화들과 함께 자기 말을 포장한다. 요기즘이나 ‘요기 베라의 철학’이나 ‘요기 베라에게 배우는 인생’ 부류의 책들 대부분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사실을 따져보니, 곧 팩트 체크를 하니 요기 베라가 처음에 그런 의미로 한 것이 아니라며 비난하는 게 옳은 길일까?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한국인의 여행 문화를 바꿀 정도로 히트를 하던 1990년대 중반에 한 인사가 ‘아는 만큼 보인다’에 이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한 부분의 인용이 부정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을 읽을 가치가 없다고 했다. 워낙 꼼꼼하게 수치를 보던 양반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한 점의 오류로 그는 그 책이 지닌 모든 가치를 지워버렸다.

물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고 한다. 여론 조사나 마케팅 조사에서도 전수 조사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샘플이라고 하는 소수의 소위 대표성을 지녔다고 하는 집단을 조사한다. 미래의 큰 흐름이 될 현재의 작은 조짐을 포착하는 게 트렌드 전문가의 일이다. 문제는 요기 베라의 말에 붙이는 것처럼 해석이다. 같은 것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의 정사(正使)와 부사(副使)가 일본의 도발 여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물됨과 생김새를 가지고도 다르게 보고했다. 정사인 황윤길은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고, 히데요시는 담력과 지략이 있어 보인다’라고 했으나, 부사인 김성일은 ‘그럴 정황은 보이지 않고, 히데요시는 눈이 쥐 같아 위인감이 아니다’라고 폄하했다. 둘의 당파가 달라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사례이다.

무언가를 관찰하는 행위 자체에도 이유나 목적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기업에서는 보통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했는지 조사하는 걸 벤치마크(benchmark)라고 한다. 처음 벤치마크란 말을 기업에서 들었을 때의 뜻과 목적은 ‘그대로 따라 한다’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실력과 위상이 나아지면서 ‘상대의 약점을 간파한다’든지 ‘우리의 방식을 고안한다’라는 식으로 약간 다른 방향으로 뜻이 바뀌었다. 그런 목적은 따지지 않고, 무조건 과정 중에 있으니까, 예전에 하는 방식이니까 벤치마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컨설팅 보고서에는 나중의 제안이나 결론과 전혀 관련되지 않은 벤치마크가 상당한 비용을 들여 묵직한 항목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벤치마크 스터디 자체보다 더욱 문제는 스터디 이후에 아무 행동이 없는 경우였다. 벤치마크 결과를 들어서 이런 변명을 했다.

“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은 거지?”

“이미 다른 데서 했잖아.”

결국 행동하지 않는 걸 합리화하는 데 벤치마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도 답답하여 이런 말을 했다.

“벤치마크 스터디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다른 놈들도 했으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거죠. 그와 반대로 아무도 안 했으니,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인문학의 궁극적인 해석 대상은 사람이다. 사람을 디지털 시대라고 0과 1로 나눌 수 없다. 공과(功過)가 한 사람의 일생에, 어느 한 세대의 사람들 모두에게 들어 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고, 상황이 바뀌며 그 공과의 평가도 달라진다. 사람 하나가 아니라 인간의 발자취를 가지고 ‘인간 세상의 근본 원리 및 진리의 발견과 깨달음’을 찾는 게 인문학 본연의 목적이다. 그 목적을 누군가는 역사 기록에서, 유물에서,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찾는다. 그렇게 접어든 길이 어디로나 통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어디로도 이르지 못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 데로도 통하지 않지만 그래서 어느 곳으로나 열린 길이 있다. LA다저스 감독 생활을 오래 한 토미 라소다가 그의 아버지가 한 말이 그의 인생의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뒤편의 닫힌 문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앞쪽이 훤하게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요기 베라 (출처 위키피디아)
요기 베라 (출처 위키피디아)

앞머리 인용구의 주인공인 야구선수 요기 베라가 역시 길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you'll end up there."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다는 이 말도 목표를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뒷부분을 다르게 말했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 are going, any road will get you there. (어디로 가는지 정하지 않으면, 어떤 길로 가도 아무 상관 없이 도착할 거야.)”

무한히 열린 가능성과 상상력을 높게 보는 것 같다.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가 개막했다. 특히 LA다저스와 SD파드리스가 한국에서 벌인 경기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계획되지 않은 성심당 PPL과 오타니 쇼헤이의 결혼 상대와 통역 등의 숱한 화제를 낳았다. 좋은지 나쁜지 어떤 결과로 유도할지 모르는 갈림길들 속에서도 운동장에서의 야구는 계속될 것이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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