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데뷔도 하기 전에 광고 모델로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데뷔도 하기 전에 광고 모델로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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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유명한 사람들이 죽으면 신문이나 방송에 크게 나오잖아요?”

외모에만 신경 쓰고 머리는 나쁜 여성들을 ‘블론드(blonde)’라 부르면 그들을 소재로 한 ‘블론드 조크(joke)’의 하나는 블론드가 이렇게 묻는 걸로 시작한다. 상대방이 ‘그렇죠’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뭔가 대단한 걸 발견했다는 듯이 블론드가 회심의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왜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태어났을 때는 아무 보도를 하지 않는 거죠?”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갸우뚱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면서 한 일로 알려지게 된다. 아주 드물게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언론 보도로 크게 다루어지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왕가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대표적이다. 2022년 9월에 세상을 뜬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는 2013년 7월 말에 증손자를 보았다. 손자인 윌리엄스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부인 사이에 조지 왕자라고 이름 붙여진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로열 베이비(Royal Baby)'라고 하며, 영국 전체가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 대열에 여러 대기업도 참여했다. 코카콜라는 피커딜리 서커스에 있는 광고판까지 축하 문구로 바꾸었다.

인천의 대학에 강의하러 매주 가는데, 3월 중순까지 플래카드나 배너 형태로 하는 가수 나훈아의 은퇴 공연 광고가 눈에 띄었다. 4월 말부터 7월까지 전국을 돌면서 하는 투어 공연으로, 2월 말의 은퇴 발표가 크게 보도된 직후부터 광고가 걸렸다. 그 광고들을 보며 위의 블론드 조크가 생각나서 혼자 픽 웃었다. 가왕이라는 나훈아의 은퇴를 저렇게 크게 보도하는데, 그가 처음 데뷔할 때는 왜 크게 뉴스로 다루지 않았냐고 블론드는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명의 신인으로 작은 무대에 섰다가, 노래를 잘한다거나 청중들의 호응을 이끌고 그런 게 소문이 나고 알려져서 음반을 내기도 하고 방송을 타며, 차트에 오르고, 인기를 얻고 유명해지는 게 성공한 가수들이 보통 밟는 길이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유명한 왕실의 아이처럼, 지명도와 인기를 얻은 상태로 데뷔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23일 하이브 사옥에서는 ‘프렌즈 나잇’이란 파티가 열렸다. 걸그룹인 아일릿의 3월 25일 데뷔를 앞두고 인플루언서, 틱톡커, 유튜버들을 초청하여 먼저 음악과 안무를 선보인 파티였다. 선별된 인원만 초청한 팝업스토어와 같은 형태로 포토존도 마련하고 인형 뽑기, 청음실 체험 등에 굿즈도 제공했다. 인플루언서 초청 행사는 과거의 기자 초청 행사처럼 브랜드를 알리는 행사의 필수로 자리 잡은 듯한 양상이다. 유튜브 동접자 10만이면 방송사 시청률 3%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니, 그 정도 동시접속자를 모을 수 있는 이들을 모아서 하는 파티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실제 그다음 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프렌즈 나잇’의 게시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인플루언서 초청 파티 이틀 후에 아일릿의 첫 앨범인 <슈퍼 리얼 미>가 나왔다. 그래서 공식 데뷔를 3월 25일이라고 한다. 이어 3월 29일에는 KT가 젊은 층을 겨냥해서 출시한 브랜드 ‘Y(와이)’를 알리기 위해 “신인 걸그룹 ‘아일릿’이 함께하는 신규 광고를 선보인다”라고 밝혔다. 그와 함께 KT 유튜브 채널에 아일릿 멤버들이 인사하며 그 사실을 알리는 영상이 올라갔다. 바로 동영상 광고를 TV까지 포함한 전 채널에 집행했다.

당연히 영상 광고는 일찌감치 제작했을 터였다. 아무리 아일릿이 작년 아이돌 오디션을 거치며 화제를 모은 멤버들이 모여서 결성한 그룹이고, 하이브라는 BTS를 필두로 뉴진스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획사이지만, 데뷔 전에 KT의 광고 모델이 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보수적이라고 하는 KT로서는 꽤 대담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 거대 광고주의 지난 행태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들이 많았던 움직임으로, 트렌드를 반영한 측면들이 있다.

아이돌도 상품으로 출시를 위한 마케팅 계획이 마련된 지는 오래다. 1990년대 말의 HOT 등이 나오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전 세계를 무대로 하며, 한국이라고 하면 K-Pop이 가장 먼저 연상이 된다는 최근으로 오면, 아이돌을 만드는 기획사의 존재감이 커졌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과 비슷하게 ‘권력은 기획사로’ 갔다고 해도 여러 면에서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레거시 미디어를 필두로 개별 미디어의 힘은 약해졌다. 돈을 가진 기업들에 의해 좌우되는 데 이어 이제는 콘텐츠를 가진 기획사에도 휘둘리는 게 아닌가 싶다.

막강한 광고주 기업에 자신들의 아이돌 그룹을 입도선매할 정도로 기획사의 파워가 커졌다. 한편으로는 치밀하게 짜인 론칭 계획에 광고도 끼어 있는 셈이다. 그 계획으로 그룹 자체가 뜨고, 광고도 화제가 되면서 광고주도 이득을 보는 윈-윈(win-win)도 되는 셈이다. 광고가 공개되고 이틀 만인 3월 31일과 4월 1일에 벅스 차트에서 아일릿이 1위를 하고, 4월 2일에는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에 등극했다. 데뷔 이전에 광고 제작이라는 순서의 반전이 광고 효과로 발휘되는 듯하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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