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중국말에선 과거, 한국말에선 현재형인 두 도시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중국말에선 과거, 한국말에선 현재형인 두 도시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4.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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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당나라 시대 수도였던 장안(長安)에서 동쪽으로 나가는 길에 파교(灞橋)라는 다리가 있고, 거기서 사람들은 동쪽 지방으로 나서는 이들과 이별했다고 한다. 물가에는 수양버들이 있기 마련이다. 도시의 경계를 이루는 물을 건너가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를 꺾기도 했다. 그 가지를 이별의 선물로 징표로 주고 흔들었다. 그래서 버드나무는 이별을 상징한다. 파교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이들도 그랬다. 거기서 파교절류 (灞橋折柳)라는 표현이 나왔다. 이별의 아픔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별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이 나와서 시상이 잘 떠오르게 하는 곳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한강공원의 강가에도 버드나무들이 연이어 서 있다. 2킬로미터마다 다리가 하나씩 있고, 5분마다 기차가 오가는 한강 다리에서 버드나무는 그저 관상용이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의 현장이라기에는 오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슬픔의 눈물은 심한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 흩날려버린다. 사람과 시대를 나누기에는 강이 심리적으로 너무 좁아졌다.

동작대교가 보이는 한강공원 근처 수양버들.(필자 찍음)
동작대교가 보이는 한강공원 근처 수양버들.(필자 찍음)

학교에서 중국 학생들에게 '장안' 하면 떠오르는 말이 무엇인가 물었던 적이 있다. 원래 잘 대답을 하지 않긴 하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재차 한 명씩 대상으로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인가 싶어 낙양(洛陽)을 가지고 물었더니 '낙양지가(洛陽紙價)' 혹은 '낙양지귀(洛陽紙貴)'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 중국에서는 별로 쓰는 일이 없다고 한다. 차라리 한국에서 더 많이 쓰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장안과 낙양은 중국인에게는 과거의 영역에 속해 있다. 세 가지 이유로 추론할 수 있다.

첫째, 두 도시 모두 과거의 수도이다. 여러 왕조에서 수도로 있었지만, 송나라 이후로는 서부에 있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

둘째, 장안 같은 경우는 이름까지 서안(西安)으로 바뀌었다. 경주를 서라벌, 부여를 사비라고 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셋째, 낙양은 도시 자체가 너무 낙후되었다. 처가 낙양을 다녀와서 도시 전체가 천 년도 이전에 머무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장안과 낙양을 언급하는 경우가 줄긴 했지만, 몇몇 표현들은 아직도 예스럽기는 하지만 흔히 들을 수 있다. '장안의 화제' 같은 말을 보라. '장안의 명물'이라고 방송에 출연한 이가 자연스럽게 말한다. 중국에서 장안이 머나먼 과거의 씁쓰레한 추억의 장소로만 쓰이던 명·청 시대인 조선 시대 한국에서는 허난설헌까지 가사집 규원가(閨怨歌)에서 '장안유협경박자(長安遊俠輕薄子)'라고 장안을 유흥과 화려함의 대도시를 나타내는 대명사처럼 썼다. 이런 사례를 가지고 정약용은 "장안.낙양(長安. 洛陽)은 중국 두 서울의 이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취해 서울의 일반적인 이름으로 삼아 의심하지 않고 써 왔다."라고 그의 저서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비판했다.

'낙양가녀선축인주(洛陽嫁女善逐人走)'라고 중국에서는 쓰인 용례가 별로 없는데, 한국의 <토정비결>에서 나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낙양으로 시집간 여자는 다른 사람을 쫓아서 달아나기를 잘한다’라고 직역을 할 수 있으니, '낙양의 유부녀들은 바람을 잘 핀다' 정도의 뜻이다. 여기의 낙양은 허난설헌이 장안이라고 한 것과 비슷한 대도시를 뜻한다.

'성주풀이' 노래에 나오는 '낙양성 십리허에'라는 구절에서의 낙양도 역시나 영웅호걸과 절대가인이 득실대던 시끌벅적한 나라의 중심 도시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장안과 낙양이 수도나 대도시의 현재형으로 쓰이고 있다. 왜 중국과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중국은 왕조가 바뀌며 과거로 접어들고 행정구역상의 실질적 변화도 따랐다. 한국에서의 장안과 낙양은 책에서 나오는 도시들이고, 관념 속에 존재해 왔다. 현재의 수도들을 비유로 쓰는 것보다 훨씬 가볍게, 그리고 중국이기에 이념적인 위험도 떨어지게 쓸 수 있다. 과거에 기초한 관념이 현실의 위상을 넘어서든지 따로 논다. 고향 중국에서는 과거로 빠진 도시들이 한국에서는 현재의 말속에서 뛰노는 반전이 일어났다. 그런데 수양버들과 함께 강가에서 옛 시대의 장안과 낙양의 정서에 빠져들기에는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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