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좌담회] 차별화된 브랜드 체험과 정체성을 알리는 세련된 방법, 기업 매거진

[특별 좌담회] 차별화된 브랜드 체험과 정체성을 알리는 세련된 방법, 기업 매거진

  • 채성숙 기자
  • 승인 2021.03.23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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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기업(브랜드) 매거진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브랜딩
일시 : 2021년 3월 16일
장소 : 한국광고총연합회 대회의실
참석자 : 박재항 대표, 안소영 편집장, 이종국 대표, 최영호 발행인 (가나다순)

기업이나 브랜드는 끊임없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언론이나 광고, PI, CSR 그리고 SNS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기업이나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그 중에 매거진(사보)는 온드미디어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기업의 문화적 역량을 뽐내기도 했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고, 기업들의 경영방침이 변경되면서 서서히 우리 주위에서 기업의 매거진은 사라졌다.

기업 매거진 또는 브랜드 매거진은 과연 디지털 시대에 필요없는 것일까? 시대에 맞게 변신한 매거진은 오히려 기업이나 브랜드의 철학을 전달함으로써 브랜딩에 더 효과적인 미디어가 아닐까?

매드타임스는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안소영 마리끌레르 편집장, 이종국 엠엠파트너스 대표, 그리고 최영호 매드타임스 발행인겸 편집국장이 "기업(브랜드) 매거진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브랜딩"이라는 주제로 의견을 나누었다.

최영호 편집국장, 안소영 편집장, 이종국 대표, 박재항 대표 (왼쪽부터)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라이프웨어 매거진’

최영호 : 오늘은 기업 매거진 또는 브랜드 매거진(사보)의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기업 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사실 매거진은 상당기간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민간에서의 매거진은 점점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이런 상황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올 2월 말 유니클로 ‘2021S/S 라이프웨어 매거진’을 보게 됐습니다. 라이프웨어가 잘 만든 매거진 자체로 머물지 않고 매장 한쪽 디스플레이도 이 콘셉트로 꾸며 둔 것을 보았습니다. 브랜드와 관련된 통일된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주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요즘 종이를 없애는 추세라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지만 세련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브랜딩과 매거진 관련 전문가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종국 : 유니클로 '라이프웨어' 매거진은 흔히 말하는 사보의 가치보다 높아 보입니다. 이 매거진은 연 2회 카탈로그로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2011년 책자를 가져왔는데요, 고객친화적인 언어로 만들어서 그 당시에 카탈로그 치고도 상당히 세련됐습니다. 정보접근성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시즌상품 소개 위주로 구성해서 보기에 편하지만, 정보 전달에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탈로그가 아닌 스토리텔링을 기본으로 하게 되면, 의류 판매라는 개념을 넘어 문화를 창조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으로 매거진을 제작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부분은 인쇄매체인 브랜드 매거진이 가져가야 할 좋은 방향성을 제공해 줍니다.

최영호 : 라이프웨어는 브랜딩 차원에서는 어떤가요?

박재항 : 이번 ‘건강을 찾아서 (Find Your Healthy)’ 에디션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안도 다다오가 등장합니다. 유니클로가 브랜딩 차원에서 자신들이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일본의 긍정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이를 일본 문화, 패션에서 추구하고 실현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요즘은 웹사이트나 블로그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도, 종이 잡지가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려 그 자체로 차별화되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안소영 : 최근 유니클로가 홍보 활동을 많이 못 한 걸로 압니다. 하지만 이번에 라이프웨어 매거진 4호를 키트로 구성했는데, 책을 통해 전략적으로 친근하게 다가서고자 잘 노력한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인터뷰를 비롯해, 한국에 친숙한 다른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책을 가지고 있다가 없앤 브랜드가 여러 곳이 있어서,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는 합니다.

최영호 : 저는 2020 F/W 시즌 라이프웨어 매거진으로 이 매거진을 처음 접했는데, 매거진 제작 도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 제이슨 폴란을 추모하는 특집을 발빠르게 준비해 인상적이 었습니다. 이번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협업한 티셔츠(UT)를 제작하고, 유니클로 뉴욕 5번가 플래그십 스토어는 친환경 인테리어로 조성했다는 외신도 봤습니다. 매거진에서 이야기하는 콘텐츠와 제품, 그리고 유니클로가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가 하나로 계속해서 모아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박재항 : 라이프웨어 매거진 4호에는 글로벌화 될 수 있는 일본적인 특성, ‘일본’이라는 브랜드 요소가 잘 담겼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안도 다다오 등의 인물들은 일본스럽지 않고 전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일본 사람들이므로, 이들을 활용해 유니클로가 글로벌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게 좋았습니다. 1~3호는 다른 매거진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종국 : 이번 호에 두 명의 대표적인 일본 스타가 등장해서 그렇지, 이전 호들을 보면 꼭 일본 안에서의 글로벌화보다는, 각 에디션마다 다양성을 넣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해당 시즌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디자이너, 콘텐츠 디렉터 등과의 관계성을 부각하며 시즌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콘텐츠의 수준이, 갑자기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라이프웨어’라는 의미에 맞춰 일상적인 부분들을 담아내려 노력한 매거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소영 마리끌레르 편집장
안소영 마리끌레르 편집장

다양성을 보이는 우리나라 기업 매거진 : 라이프 이즈 오렌지, 모닝캄, 선데이서울

최영호 : 우리나라에도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 괜찮은 기업 매거진이 꽤 있습니다. 이노션의 ‘라이프 이즈 오렌지(Life is Orange)’나 대한항공의 ‘모닝캄(Morning Calm)’ 등이 고급스럽게 브랜딩을 잘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매거진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매거진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종국 : 실제 이 업에서 일하면서 많은 기업 매거진들이 계속 없어지는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어쨌든 다운사이징 되어 가는 시장은 맞으니까요. 다만 남은 매거진들이 한 곳으로 쏠리지 않고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인쇄 매체로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 기업 매거진이 소통과 홍보 역할을 했다면, 현재 거기에 브랜딩, 마케팅의 역할을 더해 야 살아남습니다. 라이프웨어 매거진이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죠. 대한항공 모닝캄은 기내에서 승객에게 역할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아직 전통을 유지하고, 이노션은 기업 자체가 독창성을 강조하는 곳이니 라이프 이즈 오렌지 매거진에도 독창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요즘 누가 인쇄야, 온라인이지’라는 한 마디가 상황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유행성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자기만의 역할이 분명한 인쇄매체들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최영호 : 그런 측면에서 ‘선데이서울’이 재미있지 않나요? 이마트 판촉물 안내지임과 동시에 매거진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요.

이종국 : 저는 선데이서울의 성격이 조금 애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즉, 매거진이라고 볼 것인지, 판촉 전단 개념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 70년대 느낌을 살려 일부러 못 만든, 바이럴 개념으로 접근한 매거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소영 : 이마트에서 선데이서울을 보고 집어 들었는데, 일단 잘 읽히지가 않더라구요. 굳이 집에 가져가서 읽고 따라하지 않을 것 같았고, 결과적으로 마케팅 용으로 끝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재항 : 이마트 매장에 방문객이 무빙워크나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면서 볼 수 있도록 포스터 형식으로 붙어 있고, 한쪽 벽 선반에 선데이서울을 디스플레이가 되어 있습니다. 쉽게 볼 수 있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죠. 이는 아직까지 프린트 텍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잡지는 한 번 나오면 레어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대학내일을 선데이서울처럼 레트로, B급 감성으로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 입소문을 타서 구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라이프웨어를 콘셉트로 한 유니클로 매장 디스플레이
라이프웨어를 콘셉트로 한 유니클로 매장 디스플레이

기업 매거진의 장점은 명확한 타깃

최영호 :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 매거진들을 보면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모닝캄은 어떻습니까?

박재항 : 모닝캄은 현재 발송 서비스는 중단했고, 월간을 계간으로 변경해 제작하고 있습니다. 모닝캄은 기내지 중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제작되는 매거진으로 대한항공 서비스 수준을 고급스럽게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외국에는 일등석과 비일등석에 비치하는 기내지가 다른 항공사도 있습니다. 모닝캄은 다양한 승객이 있는데도 일률적으로 잡지가 제작되는 것은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안소영 : 저는 지금 대중 매거진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니, 브랜드 매거진을 만들 때 가장 좋은 건 정확한 타깃에게 책이 간다는 점입니다. 타깃이 명확하니 책 만들기가 더 편하고 재미있습니다. 모닝캄은 여행을 좋아하는,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보니까 타깃이 더 명확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라이프웨어 매거진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라이프웨어’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졌고 매거진도 잘 따르고 있습니다. 화보를 너무 각 잡고 찍지 않고, 콘텐츠도 누가 나오든 상관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잘하고 있는 거에요.

최영호 : 편집장님께서 사진을 말씀하셨는데요, 사진하면 이케아 카탈로그가 최고 수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케아 카탈로그야 말로 사진을 각 잡고 찍는 매거진이고, 라이프웨어 매거진은 일상 속에 묻어 들어가는 콘텐츠로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라이프웨어는 종이도 강조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유광지, 힘을 뺄 때에는 무광지를 이용해 강약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이종국 : 아시다시피 인쇄 매체에서 종이 재질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타깃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라이프웨어 매거진은 앞에는 아트지 계열의 얇은 종이를 사용했고, 뒤에는 모조지 계열의 종이를 혼합해 사용했습니다. 콘텐츠, 편집에 따라 혼용한 것이죠.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만드는 매거진은 좀 더 프리미엄한 느낌을 주기 위해 종이도 조금 두꺼운 고급 용지를 사용합니다. 그런 매거진들의 경우 라이프웨어 매거진보다 용지 비용이 두 배 정도 더 들 것입니다.

인쇄 매거진의 개수가 적어지다 보니, 소유하려는 니즈는 훨씬 강해진 것 같습니다. 특히 삼성카드 매거진S, 현대카드 블랙 등 금융권에서 나오는 매거진들은 우편으로 발송하기 때문에 받아보는 사람들이 프라이드를 느끼는데, 그래서 매거진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안소영 : 라이프웨어 매거진의 경우, 연령대는 어떤가요? 저는 밀레니얼 세대가 매거진을 실제로 가져가는지 궁금합니다.

최영호 : 롯데월드몰이 사무실과 가까워서 점심 시간 등에 들릴 때가 있습니다. 유니클로 잠실 롯데월드몰점을 지나가다 보면, 라이프웨어 매거진을 살펴보는 사람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매거진 콘셉트에 맞게 디스플레이 된 곳에서 젊은 여성들은 사진 찍고 매거진을 살펴보고 가져가더라구요. 그런데 나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종국 : 일단 라이프웨어 매거진은 두 가지 언어로 쓰였기 때문에, 폰트 크기가 작기도 하고 젊은 연령대 타깃인 것 같기는 합니다.

최영호 : 그런 점에서 SRT 매거진은 어떤가요? 모닝캄과 비교해서, 조금 높은 연령대가 타깃으로 보여집니다. 편집도 2000년대 초반 느낌이 들고요.

이종국 : 라이프웨어 매거진과 SRT 매거진의 기본적인 차이는 클라이언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공공기관 매거진은 입찰에 의해 최저 가격으로 결정되거든요. SRT 매거진은 입찰을 통해 금액에 맞춰 제작하다 보니 높은 퀄리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라이프웨어 매거진은 그 반대이죠.

최영호 : 공공기관 매거진은 무조건 입찰을 통해 제작하다 보니 퀄리티 향상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노션 ‘라이프 이즈 오렌지’를 보면 입찰로 제작된 매거진임에도 퀄리티에 대한 나름의 기준으로 갖고 지속해서 발전하고 통일감을 줍니다. 이를 보면 기획자나 경영자의 관심이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종국 엠엠파트너스 대표

기업 매거진의 성패는 오너십

박재항 : ‘라이프 이즈 오렌지’는 제가 이노션에 처음 있을 때 만들었습니다. 제일기획, 오리콤, 엘지애드 등 타사 사보와 달리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으로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사내보, 사외보의 딜레마는 ‘홍보성 기사, 제품 판매에 도움되는 내용을 많이 넣자’는 생각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우리를 세련돼 보이게 하는 기사를 넣자’는 생각의 충돌입니다. 라이프 이즈 오렌지도 1, 2호에서 뒤로 갈수록 점점 회사 정보가 많이 들어간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종국 : 라이프 이즈 오렌지는 단순히 회사 PR의 차원을 넘어서 정보를 얻도록 기획과 디자인이 잘 된 매거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영호 : 멘토, 인사이트를 원하는 학생들이 라이프 이즈 오렌지를 많이 읽습니다. 특히 자사 글로벌 네트워크 CD 등의 인터뷰를 보여주는데, 세련된 형태로 회사의 경쟁력과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종국 : 글로벌 스탠다드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독자층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적 역량이 많이 녹아 있습니다. 작은 기사이지만 읽고 싶게끔 나름의 비주얼을 만드는 데에도 예산이 많이 투입된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요즘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매거진의 형식을 가져왔고, SNS적인 디자인 요소도 많이 넣어서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안소영 : 저도 ‘라이프 이즈 오렌지’를 보며 많이 반성했습니다. 주제를 정할 때 ‘과연 사람들이 심도 있는 기사를 책으로 읽고 싶어할까’ 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매거진은 시의적절하게 주제를 을지로, 젠더, 지속가능성 등으로 잘 선택했고, 정보 깊이도 균형감 있습니다. 라이프 이즈 오렌지를 보고 든 생각은 ‘만약 제일기획에서 사보를 다시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였습니다. 제일기획이 다시 만들면 라이프 이즈 오렌지 같을까요?

최영호 : 저는 '라이프 이즈 오렌지' 같은 스타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기획도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 콘텐츠를 크리에이티브하게 잘 다룰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일기획은 더 잘할 수 있는 보다 깊이있는 콘텐츠, 정답, 솔루션 등을 다루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사람들도 이런 것을 선도기업인 제일기획에 기대하지 않을까요? 

이종국 : 업종 안에서 ‘선도하는 기업을 따라갈 것이냐’, ‘오히려 다른 개념에서 접근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노션은 후자를 택했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고 지금까지 발간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안소영 : 기업 매거진은 브랜딩, 마케팅 차원에서 중요한데,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조금 부족하지 않아 싶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아모레퍼시픽 사보인 ‘향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향장이 K-뷰티의 도감이 될 만한 정말 중요한 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여러가지 한계가 있어서 아쉬워요.

이종국 : 향장은 1958년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보인 태평양의 ‘화장계’가 그 모체입니다. 화장품 방문판매가 성행하던 시절 방문판매 용으로 시작됐는데,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향장이 뷰티업계에서 독보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매거진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실은 조금 아쉽습니다.

최영호 : 저는 아모레퍼시픽 회장님께서 향장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향장도 충분히 유니클로 라이프웨어 매거진처럼 K-뷰티의 독보적인 매거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소영 : 그런 면에서 라이프웨어 매거진은 독특합니다. 회장이 정말 이 매거진에 대한 오너십이 강하신 것 같습니다. 뽀빠이 편집장 출신을 스카우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유니클로처럼 오너십이 강한 회사가 많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매체 환경과 기업 매거진

이종국 : 기업에서 매거진이 없어진 것은 복합적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016년에 나온 김영란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행인이 들어가면 언론사가 되고, 언론사는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부담을 느낍니다. 또한 사외보는 발송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없어진 부분도 있습니다. IMF와 금융위기, 김영란법 등이 계기가 되어 점차 없어졌습니다.

박재항 : 그리고 매체 환경이 변한 점도 기업에서 매거진이 없어진 계기가 됐습니다. 특히 IMF 때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금융위기 때는 스마트폰, SNS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인쇄 보다는 온라인, 모바일에서 콘텐츠가 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 점도 간과하기 힘든 점이죠.

이종국 : 요즘은 경계성이 없는 부분에서 온라인 매체가 주는 장점이 확실히 있습니다.

최영호 : 저는 신문을 만드는 입장에서, 인쇄물로 만들 때와 온라인으로 만들 때의 관여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인쇄물로 나갈 때는 퇴고도 여러 번 하지만, 온라인은 오히려 가벼워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 것도 있습니다.

안소영 : 하지만 럭셔리 시장에서는 여전히 인쇄 매체로 나와야 인정을 해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종국 : 레트로가 유행하는 것처럼 인쇄에도 역트렌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의 기업체 매거진
외국의 기업 매거진

기업 매거진이 나갈 길 : 경험과 정체성

최영호 : 기업의 인쇄매체로서의 매거진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안소영 : 저는 ‘경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라이프 이즈 오렌지를 접하고 개인적으로 이노션이라는 브랜드가 좋아졌습니다. 향장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아모레퍼시픽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고요. 대한항공은 좋아하지 않는 브랜드였지만 모닝캄 덕분에 호감이 생겼습니다. 책 한 권, 한 장의 칼럼, 한 줄의 카피를 통해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이 기업체 매거진입니다.

이종국 : ‘라이프웨어 매거진’, ‘라이프 이즈 오렌지’, '모닝캄'은 왜 살아남았을까요? ‘자기만의’ 이야기가 확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브랜드의 차별적인 부분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 매거진은 정보, 오락, 교육 등 다양한 기능이 들어가 있어야지 ‘잡스러운’, ‘잡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것 하나에 몰입할 수 있는 책이 살아남습니다. 그 회사를 보여줄 역량이 집대성 되어야만 살아남고, 인정받지 않을까요.

박재항 : 아무리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제공해도 내 몸에 계속 붙여 다니며 간직하고 볼 수 있는 것은 프린트 매체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니클로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안도 다다오 등 인물을 활용해 섬세하면서도 글로벌로 통할 수 있는 콘텐츠가 지금 시대 라이프와 맞다는 것을 강조하는, 확실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불필요한 건 덜어내면 좋겠습니다. 현대기아차에서 나오는 매거진은 직원이 아이들과 뛰노는 모습부터 20년 후 수소차 모습까지, 광범위하고 어떤 것은 논문 수준의 콘텐츠가 담겨있습니다. 이런 점은 조금 부담스러우므로 군더더기없이 덜어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라이프웨어 매거진처럼 정체성이 확실하게 와닿아야 합니다.

정체성이 명확한 매거진으로, 유나이티드항공이 일등석 승객에게 제공하는 ‘랩소디’, 에어비앤비 ‘파인애플’, 베네통 ‘컬러스’, 레드불 ‘불레틴’ 등이 있습니다. 레드불은 모험, 에어비앤비는 여행을 콘텐츠로 다루지, 기업 자체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거진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거진에 대한 생각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매거진을 비용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기업환경이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없애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매거진이 단순히 비용이기만 할까요? 경영진들이 매거진이 수익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영호 : 디지털 시대 매거진은 오히려 가지고 다닐 수 있고 회사의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기에, 더 의미 있고 오래 살아남는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상업 잡지에 비해 오히려 기업체 잡지가 제대로 만들면 좀 더 자유로운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업 잡지는 틀을 바꾸려 할 때마다 큰 노력이 필요한데, 기업 잡지는 의지만 있다면 마이너한 체인지는 가능하니까요. 나아가 기업 매거진은 중요한 문화 마케팅 수단이자, 브랜드 저널리즘의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촬영 : 이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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