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아마존 구호 뒤의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아마존 구호 뒤의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5.0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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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ortland DSA
출처 Portland DSA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Work hard. Have fun. Make history.

축구장 20개 이상의 넓이를 자랑한다는 아마존 물류센터 벽에 걸려 있는 슬로건이다. ‘아마존답다’라는 게 처음 저 구호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아마존에서의 노동 강도는 ‘열심히hard’라는 단어조차도 너무 약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직접 일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자주 접하는 비슷한 업체들에서 벌어지는 과로로 인한 사고를 생각해보라. IT를 활용한 로봇조차 사람의 노동력을 더욱 짜내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느낌조차 준다. 창립자인 베조스 자신이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상으로 직원들을 잡는 유형으로,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직원들까지도 그 압박감이 전달될 지경이었다.

선정적인 보도로 이름 높은 영국의 더선(The Sun)이라 약간 의심이 가기도 하지만, 아마존 창고에 잠입 취재를 해서 시리즈로 실은 적이 있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Rushed Amazon staff pee into bottles as they’re afraid of time-wasting’ (항상 쫓기는 아마존 직원은 시간 낭비를 없애려 오줌병에 소변을 본다) - The Sun. April 15, 2018.

이번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영화였던 <노매드랜드Nomadland>의 원작으로 번역 출간된 <노마드랜드>(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엘리 펴냄, 2021)-영화와 책의 표기가 다르다- 책을 보면 주문 받은 물건들을 끄집어내는 일을 하는 ‘픽커(picker)’ 업무를 맡아 아마존에 들어간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운동 기록 밴드인 핏빗을 차고 하루를 보냈단다. 하루 동안 그가 걸은 거리는 물경 29킬로미터였다고 한다. 여기에 44층 계단을 오르내렸다고 떴다고 한다.

쉴 사이 없이 다녀야 하는 상황인데, 아마존의 두 번째 구호는 거기서 재미를 느끼라(Have fun)고 한다. 하루 29킬로미터를 걷고, 44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이들에게 재미 운운할 수 있을까. 일을 열심히 하여 그렇게 번 돈으로 나중에 재미있게 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는 ‘역사를 만들자(Make history)’라고 하는데, 온라인 비즈니스의 새로운 역사를 쓴 아마존에서 베조스를 비롯한 몇 명이야 역사에 빛나겠지만, 대부분의 아마존 직원들은 그 역사의 물결 속에 스러져 가지 않을까. 사실 이미 상당수가 휩쓸려 갔다.

책을 읽으면서 집이 없이 차량을 타고 미국 전역을 떠도는 ‘하우스리스houseless 노마드’들을 아마존에서 연말 성수기에 몇 천명 단위로 단기 채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존에서는 아예 이들 노마드를 겨냥한 ‘캠퍼포스Camper Force’라는 인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이 너무 힘들어 원래의 예정 일수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떠나며, 설사 계약대로 완수한다고 해도 크게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 노마드의 상당수들은 은퇴 시기를 지난 60대 이상이 다수인데도 말이다. 아마존의 혹독한 업무 환경과 비정한 기업 문화를 가지고 이들 노마드들은 신조어를 만나 조롱하고 자기 위안을 삼기도 한다.

대부분 단순한 업무 한 가지만을 반복하며 영혼 없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영락 없이 좀비같다고 해서 ‘아마존의 좀비’ 혹은 ‘아마존이 만든 좀비’라는 뜻으로 ‘아마좀비Amazombie’라는 단어가 나왔다.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고 사육하고 훈련시키는 동물과 같은 대상으로 임시 직원들을 다룬다고 해서 아마존과 동물원zoo를 합쳐 자신이 일하는 창고를 ‘아마주 Amazoo’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을 쫓아낼 때는 가차 없이 차갑다고 해서 ACS를 당한다고 한다. ‘아마존의 차가운 어깨’ 곧 ‘아마존의 냉대’를 뜻하는 ‘Amazon Cold Shoulder’의 약자이다.

유통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며 위세를 떨치는 아마존의 위기는 내부 노사관계에서 올 확률이 크다고 본다. 노조 설립을 두고 계속 문제들이 작게나마 불거져 나오고 있다. 최고 최대의 유통기업보다는 찬란한 아마존 역사의 뒤안길에서 일시적으로 고용되었다가 사라져 간 노마드 캠퍼포스들이 만든 몇 개의 신조어들이 아마존의 미래를 만들고. 후대에 먼저 환기되는 역사 단편이 될 수 있다. 아마존이여, 직원들에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식의 즐거움을 강요하지 말라. 아마존 역사를 만들며 사라지지 않고 직원들이 함께 역사에 남는 방도를 강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도 감당할 수 없는 반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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