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지옥의 천사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지옥의 천사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5.24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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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ngelmeadowbook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다시 영국 축구 클럽과 그 팀이 기반으로 하는 도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클럽 대항 축구 대결로는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이 돌아오는 일요일, 한국 시간으로는 월요일 새벽에 열린다. 프리미어 리그 중반부터 맨체스터 시티 축구 팀의 트레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지난 주에 레스터시티의 FA컵 우승을 소재로 얘기했는데, 결승전 직전까지만 해도 나는 맨체스터 시티가 결승에 올라갔고, 당연히 우승까지 차지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상 맨체스터 시티는 준결승에서 첼시에 1:0으로 패배했다. 그런데 그 첼시를 이번 일요일 더 큰 경기에서 만난다. 맨체스터 시티로서는 설욕의 무대를 꿈꾸겠고, 첼시로서는 FA 결승에서의 아쉬움을 달래려 기를 쓰고 나올 것이다. 

20대 친구들에게 맨체스터라고 할 때 떠오르는 것들을 말해보라고 하면 ‘유나이티드’와 ‘시티’의 두 축구 팀들을 필두로 하여 박지성 선수, 퍼거슨 감독,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로 부자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만수르’와 두 팀을 거쳐 갔거나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의 이름을 거명한다. 나는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면방직의 도시로 맨체스터를 처음 접했다. 산업혁명의 발원지처럼 언급되었고, 빅토리아 시대 결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의 산업 부문을 책임진 도시라고 했다. 이후 대학에서 산업혁명 뒤의 풍경에 대해 눈을 뜨면서 맨체스터의, 현대 산업의 빛과 어둠이 얼마나 극명하게, 그래서 더욱 비참하게 엇갈리며 병존하는 상황을 보았다. 모순의 상태가 지명에서 그리고 어느 한 인물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출처 angelmeadowbook

맨체스터에 ’Angel Meadow’라는 지역이 있다. 단어의 뜻으로만 보면 '천사의 초원(혹은 목초지)'같은 깨끗하고 푸르른 풀밭을 연상시키나, 이 지명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19세기 중반의 맨체스터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장군이자 행정가로 이름을 떨쳤던 찰스 네이피어(1782~1853)은 1839년에 맨체스터를 두고 이렇게 썼다.

"맨체스터는 세계의 굴뚝이다. 부유한 악당과 가난한 불량배, 술에 취한 부랑자, 매춘부들이 도덕을 만들고, 비에 젖어 반죽으로 변한 검댕이 지형을 이룬다. 유일한 경치는 높다란 굴뚝이다. 지옥의 문이 열렸다." (<메트로폴리스> 358쪽)

그 맨체스터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빈민가가 에인절 메도였다. 그곳을 프리드리히 엥겔스라는 독일 청년이 찾아갔다.

"어디에나 폐기물과 쓰레기와 오물이 쌓여 있다. 강기슭의 무척 거친 길을 따라 바지랑대와 빨랫줄 사이로 걸어가면 어지럽게 모여 있는 조그마한 1층짜리 단칸 오두막들이 나온다. 오두막 대부분은 바닥이 흙이고, 사람들은 오두막의 단칸방에서 일하고 쉬고 잠을 잔다." (<메트로폴리스> 365쪽)

그때의 관찰을 배경으로1845년 엥겔스는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상황>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자본주의와 산업시대의 섬득한 미래로 일컬은 새로운 생활방식을 일별하는 책'이란 평가를 받았다. 에인절 메도는 '지상의 지옥'이라고 비유되었다.

시카고에는 실제로 ‘작은 지옥’, '리틀 헬Little Hell'이라는 지명이 붙은 지역이 있었다. 북쪽의 운하 한 가운데 형성된 섬이었는데, 악취가 심해서 돼지조차 몹시 진저리치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고 한다. 시카고 강 양쪽의 판자촌 지대는 기워놓은 듯 해서 '패치(Patch)'가 있었고, 도살장과 정육공장이 몰려 있던 지대의 이름은 'Packing Town'이었다. 그곳에는 ‘천사의 초원’처럼 에둘러 비유를 쓸 여유조차 없었나 보다. 아주 직설적인 네이밍들이다. 도살장, 그에 딸린 쓰레기 수거장이 피와 동물의 내장이 썩으며 내뿜는 가스 때문에 거픔이 생기는 개울이 있는데 이름이 '거품내', 곧 ‘Bubbly Creek’였다.

사실 엥겔스의 아버지 에르멘 엔드 엥겔스는 면사 방적 회사의 공동 소유주였으며, 엥겔스의 아버지는 아들이 공산주의 신념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들을 맨체스터로 보냈다. 맨체스터에서의 생활과 관찰은 엥겔스의 신념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리고 마르크스라는 그의 절친과 함께 어떤 반전을 만들었는지는 이후의 세계사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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