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배짱은 비슷했지만 반전의 결과는 달랐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배짱은 비슷했지만 반전의 결과는 달랐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6.0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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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셀레스(출처 autoclassics)
피터 셀레스(출처 autoclassics)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명품 차량이 주인을 처분하는 걸 소망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사는 이와 파는 이가 바뀌어진 것 아닌가 싶다. ‘허리 휜 껌이 다가와 할머니를 이백 원에 팔고 감’이란 함민복 시인의 작품이 생각나기도 한다. 영화 <핑크 팬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영국의 코미디 배우인 피터 셀러스(Peter Sellers)는 자동차 수집광이었다고 한다. 배우로서 시침 뚝 떼고 벌이는 무표정의 코믹 연기로 유명한 그가 실상은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단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인 척하지 않는 한 자기 속내를 또렷하게 밝히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위의 광고는 그런 소심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피터 셀러스는 그런 어찌 보면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하여 “피치 못해 훌륭한 배우가 되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업의 경영자 중에는 피터 셀러스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이 많다. 미국 남부의 속성이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고장인 미시시피 주 출신으로 페덱스(FeDex)에서 최고 운영 책임자, AT&T 무선사업부에서 최고경영자를 지낸 짐 바크스데일(Jim Barksdale)이란 인물이 있다. 넷스케이프를 스타트업부터 성장시켜 AOL에 성공적으로 매각했고, 이후는 부시 대통령 시절 대통령 자문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자주 인용되는 그의 말이 있다.

“데이터가 있으면 데이터를 이용하자. 각자 의견이 다르면 내 의견대로 하자.”

출처 AZ Quotes
출처 AZ Quotes

소비자조사는 하지 않았고, 그 의견이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미국의 광고인이 조지 루이(George Louis)는 이런 말을 헸다.

“정말 빼어난 아이디어들은 조사로 평가할 수 없다. 단지 평범한 것들만이 평가될 뿐이다 (Great ideas can't be tested. Only mediocre ideas can be tested).”

오랜동안 아주 공감해오던 말이다. 얕지만 개인적인 경험까지 들어서 조사의 한계와 올바른 이용법에 대해서 얘기해 왔다. 그러나 '객관'과 '과학'이란 미명 하에, 최근 10년 전 부터는 자기 입맛대로 정의한 '빅 데이터'를 들먹이기도 하며 조사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굳이 전국민이 투표할 것 있냐, 여론조사한 걸로 결정하자는 얘기까지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이제는 인공지능, 곧 AI에 모든 걸 맡기면 되지 않느냐는 소리도 나온다. 그럴 때 바크스데일과 같은 배짱이 빛을 발한다. 그런데 그의 의견에 따랐을 때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그렇게 책임을 진다고, 다른 사람들을 맘대로 능멸하고 함부로 대할 권리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Fox TV의 최초 CEO였던 로저 아일스(Roger Ailes)는 극보수주의 성향에 시청률을 올리고 자신이 미는 인물을 띄우기 위해서는, 혹은 그 반대로 찍은 인사를 몰락시키려는 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 컨설턴트로 유명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에는 NBC TV에 있었다. 당시 NBC는 GE의 계열사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어느 날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Jack Welch)가 소집한 중역회의에 참가를 했었다. 잭 웰치가 유기농 다이어트를 시작한 직후라 점심 식사로 잭 웰치의 식단에 맞춘 음식들이 나왔단다. 그러자 괄괄하고 직선적인 성격에 말투로 유명했던 그는 “나보고 이런 쓰레기를 먹으라는 거야. 치즈버거를 가지고 오라고”하고 소리치고, 결국 치즈버거를 먹었다. 그걸 보고 잭 웰치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두들 치즈버거를 먹고 싶었어. 그런데 그걸 시킬 배짱이 있는 사람은 아일스 밖에 없었어(Everyone wanted to have a cheeseburger, but he was the only one with the guts to ask for it.)"

그 아일스는 ‘미투(Me Too)’의 물결이 일어나던 초기에 성폭력과 추행을 저지른 방송계의 대표 인사로 지목되었다. 20명이 넘는 여성들이 구가 저지른 행위를 제보했다. 2019년에 개봉된 영화 <Bombshell(밤쉘)>이 바로 아일스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비슷한 성품이었지만, 바크스데일은 1억 달러 이상의 기금을 미시시피 중에 기부하는 등 자선 활동으로 유명하다. 결단과 전횡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 동전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반전의 품격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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