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피자가 만든 레스터 시티의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피자가 만든 레스터 시티의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5.1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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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레스터 시티 홈페이지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잉글랜드 FA컵 대회 결승이 영국 시간 2021년 5월 15일 저녁에 열렸다. 러시아의 석유 재벌이 인수했고, 한때 삼성이 후원해서 돈 많은 구단의 대표격으로 불렸던 런던의 첼시와 인구 30만의 중소도시를 연고지로 하는 레스터 시티가 결승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레스터 시티는 2000년 이후에 2부리그에서 지낸 시간이 가장 많았고, 2008-09 시즌은 3부리그로까지 떨어졌었다. 2014-15 시즌에 잉글랜드 축구 리그의 최고 등급인 프리미어리그에 오르기까지 10년이 넘는 기간이 걸렸다. 그 시즌에도 레스터 시티는 2부리그로 강등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에 걸맞는 성적을 보였다. 2014-15 시즌에 17경기 연속으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초반 29경기에서 레스터 시티는 단 4승 만을 거두었는데, 후반 9 경기를 남겨두고 7승을 거두는 무서운 뚝심을 발휘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 직전에 첼시에 패배하여 강등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최종 경기에서 넷플릭스 다큐 프로그램으로 요즘은 더욱 유명한 선덜랜드와 무승부로 겨우 프리미어리그에 남을 수 있었다.

이어진 2015-16 시즌은 세계 축구 역사에 남을 문자 그대로 동화 같은 우승이었다. 바로 위에서 말한 대로 직전 시즌 강등에 한 발을 걸쳤다가 가까스로 면한 팀이 바로 다음 해에 우승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혼자서 경기를 지배하는 슈퍼스타가 갑자기 합류한 것도 아니었다. 레스터 시티의 선수단 연봉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하위 다섯 팀에 속했으며, 그 전해 우승을 차지했던 첼시 선수들이 받는 연봉의 25%에 그칠 정도였다. 그러니 시즌 개막 전의 레스터 시티의 우승 배당률은 5000대 1에 불과했다. 즉 2015-16 시즌 개막 전에 1만 원을 레스터 시티의 우승에 걸었다면, 시즌 후에 무려 5천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시즌 개막 이후 연승을 한 건 아니지만 레스터 시티는 여섯 경기까지 무패 행진을 달성했다. 게다가 네 경기는 0-1로 리드를 내어준 후에 쫓아가는 데 성공했다. 공격에 비해 취약한 수비력을 개선하기 위하여 그해 부임한 라니에리 감독은 여섯 번째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제안했다. “우리가 무실점을 기록하면 모두에게 피자를 쏘겠다. 나는 꼭 피자를 사고 싶다. 그런데 선수들은 피자를 원치 않는 것 같다. 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여섯 번째부터 아홉 번째까지 네 경기 연속 레스터 시티 선수들은 감독이 쏘는 피자를 먹을 수 없었다. 시즌 10차전에서야 1-0으로 겨우 하위 팀을 이겼는데, 경기 내용은 불만족스러웠다. 라니에리 감독은 ‘잉글랜드보다는 이태리식 경기였다’라고 평가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선수단 전원은 레스터 시내에 있는 피자집에 가서 자기 입맛에 맞는 피자를 먹었다. 약간은 툴툴거리는 가운데 함께 피자를 먹은 게 엄청난 홍보 거리가 되었다. 그보다 역시 내부 결속력을 다지며 전환점이 되었다. 이 피자 파티 이후 레스터 시티는 나머지 20 경기 이상의 절반 이상을 무실점으로 치렀다. 결국은 5000대 1의 확률을 뚫고 우승을 차지했다.

피자가 이룬 반전일까? 당연히 어느 누구도 피자 하나로 우승이 가능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피자는 한 요소였을 뿐이지만, 교훈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 첫째, 작은 보상이라도 상징적으로 큰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일반 시민보다는 비교할 수 없는 연봉을 받는 선수들에게 피자 하나가 금액적으로야 무슨 가치일까. 그래도 의미를 담으면 충분한 상징성을 가지며, 자극을 줄 수 있다. 둘째,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피자 상품을 내걸었지만 계속 실점을 허용했다고 해서 흐지부지 돌려버렸으면 팀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을지 모른다. 말은 한 번 나오면 꼭 지켜야 한다. 상품이나 보상은 눈으로 보고 맛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따끈하고 입맛에 맞춰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피자는 안성마춤이었다.

레스터 시티의 FA컵 우승을 기념하며, 그것도 첼시를 눌렀다기에 더욱 기뻐하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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