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영웅 만들기의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영웅 만들기의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5.3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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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서강대 재학 시절부터 영어귀신으로 유명했던 안정효는 번역가로 이름을 날렸고, 1980년대에는 <하얀 전쟁>이란 자신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가로도 필명을 떨쳤다. 그는 1966년 9월 보도병으로 베트남에 파병되었다. 1967년 초 최전방 작전을 취재하러 갔다. 백마부대가 혼헤오 산에 있는 베트콩 연대 본부를 타격하는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전형적인 육사 출신 소대장이라고 표현한 인물을 만났다.

자칭 '사자 소대장'으로 자기 부하들은 '사자 새끼들'이라고 했던 김호경 소위였다. 그 작전 지역내에서 김호경 소위를 찍은 사진들을 보도병 안정효가 사이공으로 나가서 인화했다. 그 중 특히 소위가 잘 나온 것 두 장을 가지고 왔다. 사단본부로 돌아오자마자 소위에게 사진을 전달해주기 위하여 헬기를 타고 다시 작전지역으로 갔다. 그러나 소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자서전에 이렇게 나온다. 

병사들에게서 알아보니 소대장은 사자답게 전투를 벌이다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신화를 남기지는 못했다. 착률장을 확장하느라고 터뜨린 TNT에 쓰러진 나무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허무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다. <세월의 설거지> 288쪽

그런데 그 '사자 소대장'의 죽음을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발행하는 <전우신문>-지금은 <국방일보>라는 제호를 사용한다-에서는 이렇게 보도했다. 

"부하들이 대거 희생될 위기를 맞자 몸으로 부비트랩을 덮쳐 산화했다." 

2차대전 때 일본군이 통제하던 언론에서 너무나도 많이 보도하던 방식이었다. 이건 사자(死者)에 대한 모독이다. 그리고 언론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행위이다. 아래 안정효 선생의 말 그대로이다. 

비극적이고 아까운 죽음을 맞은 젋고 멋진 장교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전근대적인 미화작업을 거쳐 희극적인 선전용 꼭두각시가 되고 말았다. ··· 인간의 죽음을 놓고 장난을 치는 전설 조작 때문에 군인에게는 인간답게 슬픈 죽음을 얘기하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세월의 설거지> 300쪽

이런 거짓 미담 기사는 지금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언론사의 상당수에 2차대전 일본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소위 전통이란 것이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눈앞의 요즘으로 치면 클릭수에 사실 여부 따위는 치워버리고 만다. 이런 '영웅 만들기'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21세기에 있었다. 

패트 틸먼이라고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인 NFL에서 제법 알려진 선수였는데, 아프가니스탄에 자원하여 참전했다가 탈레반 잔당 소탕전에서 총격을 받고 전사했다고 전했다. 곤경에 처한 동료들을 구하려다가 집중사격을 받고 사망했으나, 동료들은 그의 희생에 힘 입어 모두 구출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그런 영화에서 봄직한 영웅적인 활동을 보이지는 않았고 동료의 오인사격으로 숨졌음이 밝혀졌다. 패트 틸먼의 이야기는 나도 몇 차례 기사로 본 적이 있어서 그리 새롭지는 않았으나, 다음의 얘기는 처음 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패트 틸먼 스토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 측이 가족이란 사실이다. 정부의 '영웅 만들기'에 환멸을 느낀 그들은 사망 진위를 가리는 것만이 패트 틸먼의 죽음을 가치있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에 패트 틸먼의 어머니 매리 틸먼은 이렇게 말한다. "영웅담을 만들어 냄으로써 정부는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명백한 운명인가, 독선과 착각인가>(최승은·김정명 지음, 리수 펴냄, 2008) 중.

출처 CBS

현충일의 ‘현(顯)’은 ‘무언가를 꺼내어 다른 이에게 보인다’라는 뜻이다. 무엇을 보이는가? ‘충(忠)’으로 국가를 대상으로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정성을 다하고, 거짓이 없음을 나타낸다. 마음의 중심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자꾸 거짓을 입히려 하는가. 진실을 가리려다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런 반전을 원하는 것일까. 현충일을 맞아 ‘충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그를 허위로 포장하는 행태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연속해 일어나는 씁쓰레한 반전들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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