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유한양행 창설자 유일한은 한국 최초의 ‘위대한’ 기업인이었다.
기업이 거대해서가 아니라 기업과 기업인이란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유일한은 한국 최초의 ‘통이 크고’ 창의력이 뛰어난 광고인이었다.
그의 창의력은 유한양행 창립 광고에 나타나는데 1928년 12월 8, 9, 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유한양행 창업 광고를 3일간 연속 티저(Teaser, 호기심 환기) 광고로 게재했다. 거의 1세기 전 제국주의 일본 통치 하인 조선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국 신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창의력과 ‘통 큰’ 대담성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유일한은 현재 ‘공익광고‘로 정착한 한국의 사회 공공서비스 광고를 시작한 사람이다. (공익광고란 호칭이나 개념조차 없던 무렵이었다.) 유한양행의 영업 광고와 공익성 광고는 당시 유일한 영자 일간 신문인 Seoul Press에도 게재되었다. 공공서비스 광고의 사례 가운데 하나는 1937년 8월 26일 자 조선일보에 게재한 “민중보건운동의 제창(民衆保健運動의 提唱)” 광고에 나타난다. 이 광고에는 보건지를 무료로 보내 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의 독창성은 1930년대에 인체해부도라는 컬러 포스터를 제작해서 전국의 모든 병원과 약국에 배포한 데에서도 나타난다. 컬러 포스터란 아직 귀하고 신기하던 시절이었다.

해방 이후 유한양행은 한국 광고사상 최대의 옥외광고를 한강 철교 남쪽에 설치했다. 도시 확장에 따라 지금은 사라졌지만 컬러 조명의 이 유한양행 광고는 경부선 기차 승객이나 한강 남쪽 강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승객은 놓칠 수가 없는 한국 최대의 옥외 간판이었다.

위대한 기업인 유일한은 통 크고 창의력이 특출한 광고인이기도 했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