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조용한 방관자들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조용한 방관자들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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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88년은 서울올림픽이 있던 해다. 소년은 굴렁쇠를 굴리며 잠실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지긋지긋한 군생활이 끝나가던 때였다. 좀 길지만 편하다고 지원한 공군이였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열외하라는 말에 의장대에 차출되어 옷 데리고 구두 딱고 총 돌리며 32개월을 보냈다. 군기는 의장병의 생명이다. 내무반장은 사람의 정신이 아닌 정신이 군인 정신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살아있는 눈빛을 위해 가슴을 샌드백으로 삼았고 머리를 시멘트 바닥의 마대로 쓰곤했다. 그래야 하긴 했다. 지휘관의 '받들어~ 총!' 의 구령에 맞춰 외국원수들에게 저 세상의 눈빛을 쏘아붙여야 하고 집총과 거총의 각도에 한치의 오차가 발생하지 말아야 했다. 매일매일 오와 열을 맞추는 제식훈련이 반복됐다. 모든 동작이 수평과 수직을 이루며 전체가 한몸이 되야한다. 이 때 요령은 단순하다. 군가와 함께 연병장을 돌고 또 도는 것이다. 온 몸의 힘이 모두 빠지면 각자가 아닌 전체의 리듬이 생긴다. 개인의 딱딱한 몸이 전체의 물결속에 하나로 스며든다. 자신을 놓고 전체를 잡는 결과가 된다. 기업의 조직도 이래야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기업의 조직원은 무결점 무오류의 상태를 지향하는 마스게임의 응원단이 아니다. 유연한 발상은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필수적이다. 구성원 각자의 창의적 활동성을 보장하고 지원해야 한다. 일방적 지시와 수행이 오가는 상태는 위험하다. 따라서 강압적 리더쉽이 재앙이듯 집단속에 숨어사는 조용한 방관자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의사 결정의 난이도와 중대성이 높을수록 입을 닫는다. 이런 조직일수록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조직적 공모를 통해 담합이나 야합이 전개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안에서 썩으면 고름은 밖으로 퍼지고 전체로 번진다. 일사불란이 아니라 자유분방의 분위기를 선택해라.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복제나 변조가 아닌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상대해야 한다. 

"아침이 되어 일어났다. 따뜻한 물을 한 잔 하고 머리를 감았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을 했다. 회사에서 와서는 어제와 같은 일을 했다. 하는 업무의 내용이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늘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한다.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고 일을 더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되었다. 소지품을 챙겨서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과 좀 놀다가 시간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아침이 되었다." 샤르트르의 '구토'는 시계추처럼 반복하는 삶을 부정한다. 반복되는 삶은 연명하는 삶이다. 인생은 한번 주어진 시간이고 기회다. 남들의 삶을 흉내내며 들러리 설 이유가 없다. 자신만의 관점을 만드는 출발점은 무엇일까?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의문을 갖는 것이다. 의문은 질문으로 이어져 변화와 개선의 동인이 된다. 의문을 품는 이들이 조직의 나태와 이완을 깨는 송곳과 도끼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전파자로 자라난다. 스크라테스와 에디슨과 스티브 잡스는 그런 사람들이였다. 

그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는 회의 문화도 중요하다.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먼저 남의 의견에 토를 달아 보태려는 참석자다. 남의 생각에 편승해서 무난하게 시간을 보낸다. 또 다른 사람은 투박하든 채택되든 자기만의 생각을 꺼내는 사람이다. 미리 생각을 준비한 사람이고 자신의 관점을 던져보는 사람이다. 추임새를 일삼는 사람은 눈치만 살피다 도태되고 만다. 조직도 그럴 것이다. 천명이 모이면 천가지 의견이 분출되야 건강한 조직이다. 그래야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고 보지 못한 세계가 열린다. 보태는 사람과 꺼내는 사람을 가려내라. 창의성의 기업 아이디오(Ideo)는 눈여겨 볼만 하다. 그들에겐 ‘구조화된 혼돈의 회의 문화'가 있다. 리더는 진행하되 결정하지 않는다. 각자의 의견을 모두 꺼내놓고 구체성과 실현성을 기준으로 최종 의견을 결정한다. 실수와 오류마저 공유하고 수정하는 과정은 더 큰 성공의 주춧돌이 된다. 자신들의 관점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개방적인 문화는 개인의 자발성을 키우고 전체의 조직력을 다져 개인과 조직간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출석부의 한 줄로 사는 인생살이를 경계하자. 

 


※ 김시래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롯데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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