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감수성(Sensible Rich)의 청춘들에게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감수성(Sensible Rich)의 청춘들에게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0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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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삼성의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전문가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다. 담당자는 래미안이 경쟁 브랜드보다 젊은층에게 덜 세련된 이미지를 갖고있어 개선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답은 쉽게 구해졌다. 2012년부터 쓰고있는 '자부심의 경험'이란 슬로건이 문제였다. 자부심은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드러내려는 마음이다. 아파트가 신분과 지위를 나타낸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진짜 가진 자는 티를 내지 않는 법이다. 말없이 세련된 이미지만으로 고급감을 표현하는 애플 광고의 사례를 들어 품격이란 고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니 슬로건부터 바꾸라고 조언했다. 마케팅은 트렌드의 산물이다. 디지털과 코로나가 세상을 뒤집고 있는데 십년전 슬로건을 그대로 쓰는 것도 삼성답지 않다고 했다. 속이 쓰려야 약을 찾을 것이다. 젊은 층이 공감할만한 브랜드 이미지의 방향으로 래미안을 감수성의 공간으로 설정해 볼 것을 제안했다. 여기엔 분명한 근거가 있다. 

뜨거웠던 여름 나는 청춘의 현장에 있었다. 부산의 동서대학교 학생들과 했던 일은 롯데 자이언츠의 홍보 영상 제작이었다. 학생들은 지도 교수의 트렁크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싣고 거리로 나가 길바닥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촬영했다. 홈런볼을 받으려 몸을 던지며 촬영했고 돼지국밥집에서 비를 피하며 촬영했다. 달리는 차를 피해 횡단보도를 건너며 촬영했고 버스에서 뛰어내려 사직구장으로 내달리며 촬영했다. 스토리의 연결을 위해 모델의 얼굴 옆에서 촬영했고 관객 멀리서 촬영했다. 야구장과 도로를 겹쳐서 촬영했고 지하철과 버스를 나누어 촬영했다. 녹음도 마찬가지였다. 촬영 현장에서 녹음했고 학교의 스튜디오에 가서 다시 녹음했다. 장비는 열악했지만 투지와 과정은 프로 광고인 못지 않았다. 그들의 진면목은 촬영이 끝나고 회식자리에서 드러났다. 뭘 물어보면 숫기 없는 목소리로 짧고 담백한 대답이 돌아왔다. 과거에 한수 했다는 서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눈치였지만, 남겨진 일로 자기들끼리 두런거리고 배슬거렸다. 지도교수는 착해서 그렇다고 했다. 몇일 함께 일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학생들은 일 앞에서 분출했고 끝난 뒤에는 차분했다. 활력이 넘치면서도 침묵의 시간을 알았다. 겸손 했지만, 자존감은 잃지 않았다. 무책임한 듯 보이지만, 필요하다면 밤새서 일을 마칠 듯 했다. 정신력과 실행력의 두 바퀴가 잘 조율된 자전거 같았다. 양가적 성향은 감수성의 특질이다. 글로벌 광고제에서 60개의 본상을 따낸 잠재력은 그것이였다. 거기에 취업의 험난한 장벽을 뛰어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절박함이 더해졌을 것이다. 절박함은 놀라운 집중력의 원천이니까. 뒤풀이에서 하이볼 30잔을 주문하고 파랑새를 부르다 고꾸라진 것은 나였다. 

자신의 적성과 취향에 맞는 일을 찾아 나선 청춘들이 이들 뿐만이 아니다. 고등학생들의 '자퇴 브이 로그'도 그런 흐름의 여파다. 학교를 스스로 떠나는 학생과 그의 학우들이 영상을 찍어 이별을 기념한다.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이들은 정규 과정에 없는 과목을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학원이나 전문 기관을 찾는다. 노래를 부르며 웃는 모습으로 친구와 작별하는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답다. 이들에게 자퇴는 부적응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도전이고 용기다. 

죽음 앞에 초연했던 이어령 선생은 인간이 남길 것은 '자신만의 이야기'라고 했다. 죽은 자는 산 자와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것이 곧 인문, 인간의 문이 되리라. 성공회대에서 김밥을 나눠 주시며 가르침을 주신 신영복 선생도 자유란 자기만의 이유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나 움직임을 감지해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꾸는 능력, 바로 감수성이다. 감수성은 바람보다 빨리 눕고 빨리 일어서는 풀잎의 마음을 알아챈다. 잎새에 이는 바람 한 점에 의미를 읽어낸다. 젊은이들이 감수성을 키워 자신의 이야기로 자신만의 세계를 가꿔 나가길 기대한다. 지도를 맡고 있는 류도상 교수(60)는 아이디어는 솔루션이 아니라 문제부터 살펴야 하고 그런 마음은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선의에서 우러나온 호기심이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상한 우유를 꺼내먹는 아이들을 위해 유통 기간이 지나면 우유 패키지의 글자가 사라지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나왔다. 측은지심이 글로벌 아이디어를 만들고 학생들의 꿈을 펼치는 교두보가 되고 있다. 그들이 보여준 가능성의 원천은 감수성이다. 래미안의 브랜드 이미지도 젊은이들이 공감할 시대 정신을 고민하고 교감한 뒤라야 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감수성이 아니라도 말이다. 매사가 그렇다. 정신이 전략을 선행한다. 

 


김시래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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