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기술자와 전문가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기술자와 전문가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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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서울시의 정책홍보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시민의 내일을 위해 내일처럼 열심히 일하겠다는 '내일연구소' 캠페인이였다. 영상 시안 합의는 쉽사리 끝났다. 그러나 옥외포스터등 자잘한 인쇄 광고를 합의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예닐곱명의 담당자들은 저마다 의견을 쏟아냈다. 팔짱끼고 관전하는 상관에게 자신의 열성과 해박함을 드러내는 경연장이 되었다. 홍보의 대상은 여러분들이 아니라 시민이고 텅빈 교회에선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으니 재미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패션모델 장윤주가 런웨이를 하며 정책을 잘 생겼다고 소개한 영상은 대성공이였다. 하지만 십인십색의 구미를 맞춰가며 마무리하는데 육개월을 끌었다. 두달이면 끝낼 일이였다. 협업은 서로의 의견은 존중하되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태도와 과정이 필수다. 사공이 많아 생기는 부작용은 또 있다. 태만이 발생할 때다. 쌀 한가마니를 드는 사람 넷이 모였는데 쌀 네가마니를 못드는 일이 생긴다. 서로 미뤄 힘이 분산된 탓이다. 숫자를 믿다 느슨해지는 병폐를 없애려고 소팀제를 만드는 것은 그런 이유다. 

각도를 바꿔 한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효과적인 방식을 생각해보자.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하나를 다 끝낸 후 다른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여러 일을 돌아가며 조금씩 진도를 나가는 사람이다. 누가 더 효과적일까?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팀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은 효율적이고 능력있어 보이지만, 뇌신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그런 유형은 귀중한 정보보다 새로운 정보를 찾는 성향이 강해서 균형감이 부족하다고 했다. 일상생활도 산만하고 불안한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일 저일 건드리지 말고 한가지 일에 집중해야 순도높은 결과를 얻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새롭게 검토되야 할 듯하다. 결합과 파생의 시대다. 인문을 만난 기술이라야 꽃을 피우리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도 그런 뜻이다. 보편성(Genaralist)과 전문성(Speciality)이 합쳐져야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 

동의한다면 이걸 일처리의 방식에 대입시켜보자. 하나씩 일을 처리하면 그 속에서 그대로 정리되고 끝나고만다. 반대로 널린 일을 번갈아 처리한다고 가정해보자. 이쪽의 데이터나 정보가 저쪽으로 건너가 뒤섞여 다른 관점이 생긴다. 신나라 레코드점을 지나가다 거대한 송도신도시의 광고 콘셉트가 떠올랐다. 대한민국 신(新)나라가 그것이다. 모두가 경계하지 않는다면 악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대입해서 분별없는 댓글 문화의 폐해를 설명할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에서 낮선 것과 대면할 때 머리속에서 활발하게 벌어지는 일도 그것이다. 이종결합을 원한다면 일하는 환경도 그렇게 만들어라. 이일하면서 저일도 해라. 그때마다 새롭게 모이고 뒤섞여 다른 차원의 관점이 만들어지리라. 일과 인생도 관계도 그렇다. 일이 밥벌이의 수단이 되면 기술자다. 일과 인생이 순환되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라야 전문가하고 부른다.

 


김시래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롯데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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