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박인환과 안중근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박인환과 안중근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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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ebastiano Piazz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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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잠시 퍼부은 뒤 날이 개었다. 대학동기 김태성과 함께 운무 자욱한 남산을 돌고 자리를 잡은 곳은 을지3가 대로변의 오구반점이었다. 해산물 짬뽕과 군만두가 일품인 곳이다. 취기가 얼콰해지자 그가 시 한수를 읇었다.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청마 유치환이었다. 기타 칠 때 희열하는 그는 잔나비의 섬세한 멜로디와 가사를 극찬하다 최근 불거진 표절 문제로 주제를 옮겼다. 남의 머리로 수십년동안 배를 채우고 젊은 뮤지션까지 끌어 모아 줄을 세운 쓰레기가 넘쳐나니 까마귀 무리에 백로 몇 마리가 붙어 사는게 대중가요의 현실이라고 탄식했다. 2학기엔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장단을 치거나 반론을 던져 불이 붙여야 건져 갈 것이 있을 것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도마 위에 올렸다. 다시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이 자랑이 아니라고 했다. '대부'나 '화양연화'처럼 여운때문이 아니라 감독의 의도가 안개처럼 뿌옇게 도처에 깔려 있어 숨은 그림 찾기가 되버렸다고 했다. 형식미에 치우친 작가주의를 경계해서 대교약졸의 풍모를 되찾기 바란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육십이 목전인 사내들의 낮술은 무망해서 소모적이다. 섣부른 의기투합이 부른 현실성없는 결론으로 유야무야가 되거나 쓸데없이 격정적인 논쟁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날은 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발동을 걸었다. 김훈의 문체를 문제삼았다. 뼈대만 추려 곧게 내지르는 문체가 드라이해서 마음을 옥죈다고 했다. 개인의 감정을 곡진하게 드러낸 작품에 점수가 후했으니 그럴 법 했다. 나는 제동을 걸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 나온 공자의 경구, 바탕이 문채보다 승하면 거칠고 문채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 君子)를 들려주었다. 노래만해도 멜로디는 가사를 돕는 도구이니 문체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자고 했다.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의 기막힌 처지를 엮은 '저만치 멀리서'와 원흉의 가슴에 총알을 박은 뒤 31살의 나이에 죽어간 안중근을 그린 '하얼빈'을 들어 개인의 서사나 감정도 좋지만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에 대해 묵직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예술의 본령이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술자리의 막다른 골목엔 박인환과 김수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을 꺼내들며 저평가된 문인 중 대표선수라고 했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박인환은 추앙했던 이상을 기리며 3일간 술을 마시다 요절한다. 안중근과 같은 청춘의 나이였다. 그는 "여름은 통속이고 거지야. 겨울이 와야 두툼한 홈스펀 양복도 입고, 바바리도 걸치고 머플러도 날리고 모자도 쓸 게 아니냐"라며 한여름에 정장을 고집했다. 그는 참여시의 거목 김수영과 막역했다. 부부들끼리 교류가 오갈 정도였다. 그들의 동지적 관계는 마지막에 엇갈린다. 박인환은 전후의 이념적 갈등을 우회해서 도회적 센티멘탈리스트의 길을 선택한다.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던 김수영은 반대의 행로를 택한다. 김일성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과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민초를 그렸다. 다섯살 어린 박인환이 문단의 주목을 먼저 받았다. 낭만주의적 기질이 더해져 가끔 김수영을 무시했다. 김수영이 친절한 말투로 뭔가를 지적했는데 “이건 네가 포로수용소 안에 있을 동안에 새로 생긴 말이야.”라며 면박준 일도 있었다. 김수영이 박인환의 세계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목마와 숙녀'는 신문기사꺼리도 되지 않는다며 깍아내렸다. 박인환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김수영은 찬란하고 박인환은 그늘에 가려있다. 

박인환과 김수영의 불화는 안타깝다. 그들은 천재성을 갖춘 라이벌이였다. 라이벌(rival)이란 ‘강(river)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협력해야 마른 강가에 물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두 시인앞에도 황폐한 현실이 마른 강물처럼 놓여 있었다.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보탰다면 더 큰 수로를 뚫었을 것이다. 살면서 수많은 경쟁자를 만난다. 내게도 즐비했다. 제일기획의 유정근 선배와 크리에이티브 에어의 한승민 선배는 한 살차이지만, 전략과 아이디어에 관해선 선생같은 존재였다. 그들을 쫓아가려 안간힘을 쓰다 눈이 떠졌다. 그들의 잘난 점이 스며들어 지금의 내가 있다. 우리들의 노변한담은 명동백병원앞 버스정류장에서 끝났다. 버스를 놓치면 아내의 잔소리가 쏟아질 것이다. 늙어지면 안다. 삶은 농담같은 것이다. 자존심은 개에게 던져줘라. 라이벌에게 배워라. 배워서 남주랴.

 


김시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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