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반복과 숙련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반복과 숙련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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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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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윤석중/달) 윤석중의 동요 <달>은 달이 가진 밝음, 원만함, 은은함, 포용성 등의 상징적 의미가 잘 드러난다. 시인 강은교는 물이 자연과 만나 겹쳐지는 소리를 사람의 마음을 여는 물길의 소리라며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군, 물소리는 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저항하는 소리, 물이 바삐 바삐 은빛 달을 앉히는 소리, 물이 은빛 별의 허리를 쓰다듬는 소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중략)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가……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가"(물길의 소리 / 강은교). 어휘와 문장의 반복은 리듬을 만들어 상징성을 강화시킨다.

참가자가 무대 위로 올라갔던 망년회를 기억해보자. 사회자가 '신데렐라'라고 10번을 외치게 한다. 그리고 “독사과를 먹고 죽은 공주는?”이라며 재빨리 묻는다. 대부분 '신데렐라!'라고 답한다. 물론 정답은 백설공주다. 왜 잘못된 것인지 어리둥절해하는 이도 있다. 반복의 함정이다.  반복 화법은 자본주의의 피돌기를 관장하는 광고 카피에도 발견된다. 리듬감이 생겨 입에서 돌다 머리에 박히기 때문이다. 참! 참! 참! , 참소주의 광고 카피다. 올겨울 혼자 어때 둘이 어때 셋이 어때, 올겨울 여행 어때 파티 어때 여기 어때, 급성장한 <여기어때>의 헤드라인이다. 중요하다면 반복해라. 반복은 말의 엉덩이에 새겨진 인장처럼 기억을 사람의 머릿속으로 아로새긴다.

반복에 대한 우화가 있다. 미국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 (James Abram Garfield)의 이야기이다. 어느 파티에서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아버지의 연설을 보고 그의 아들이 말했다."글쎄 뭐랄까.. 좋긴 좋았어요, 그렇지만 전폭적으로 따라갈 기분은 아니었어요. 한번 말한 걸 다른 식으로 표현하길 무려 네 번씩이나 하더군요. 실망스러운 표정의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일부러 반복하는 거다. 내일 내가 연설할 때 청중의 얼굴을 살펴보렴. 처음 말할 때는 연단 근처 사람이 아버지 얼굴을 쳐다볼 게다.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 두 번째 말을 하면 가운데 몇몇 사람이 주목하지. 세 번째 말에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지지. 네 번째가 되면 내 말에 모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거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들어주길 바란다면 네 번은 반복해야 돼." 중요할수록 자주 반복하라는 말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중언부언과 구별해라. 술 취한 사람의 주정이 되면 역효과다. 얼마나 반복하는 것이 좋을까? '곰 세 마리의 법칙'을 소개한다. 두 번은 심심하고 네 번은 복잡하다. 세 번이 좋다. 김구 선생도 소원을 세 번 빌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민국의 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면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요라고 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소리를 높여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했다. 비즈니스 문건도 마찬가지다. 서두에 "오늘 제안하는 포인트는 이것저것 그것 3가지입니다."라고 운을 떼라. 본문에 들어가서 첫째, 둘째, 셋째를 차례로 거명하며 자세히 기술해라. 마지막에 오늘 드린 말씀은...으로 정리하며 다시 한번 되새겨라.

반복의 미덕이 글쓰기만은 아니다. 학생의 복습처럼 성과를 높이는 훈련도 된다. 숙련공은 반복의 시간을 견디고 이겨낸다. 빌 게이츠와 비틀스가 연구와 공연을 위해 쏟아부은 세월도 완벽을 향한 담금질의 시간이었다. 벼루 열개를 갈아엎고 붓 천 자루를 꺾어 추사체를 완성했다는 김정호도 그렇다. 반복된 훈련은 능력자가 되고 대가로 접어들어 일가를 이루는 원천이 된다. 여기에도 고려해야 점이 있다. 만 시간 법칙의 원저자 앤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인(Deliberate) 훈련만이 성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단순한 반복은 다람쥐 체바퀴 돌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도그마의 부작용으로 머리에 굳은살이 박힐 수도 있다.  노래 실력이 어느 정도 늘었다면 노래방 점수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든 무명가수전에 참여하든 목적지를 향한 길목마다 새로운 이정표를 심어야 한다. 의도되고 통제된 반복만이 숙성의 성과로 이어진다.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피드백해 줄 환경과 멘토를 찾아 나서자. 

 


김시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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