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역방향의 기차안에서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역방향의 기차안에서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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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2022시즌 슬로건 및 40주년 기념 엠블럼
롯데 자이언츠, 2022시즌 슬로건 및 40주년 기념 엠블럼

얼마전부터 롯데자이언츠 야구단의 마케팅 자문을 맡아 부산을 오가고있다. 외야펜스를 넓힌 부산사직구장의 개막전을 보고 돌아오는 열차편의 좌석은 역방향이였다. 어두운 부산역이 멀어져갔다. 묘한 기분이였다. 서울을 등지고 앉았으니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산과 이별하는 것이였다. 창가엔 순방향에선 볼수없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선이 바뀌면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 비지니스맨의 글과 말은 파트너의 관점을 반영해야한다. 광고 문구는 더더욱 그렇다. 물건파는 주인의 마음을 간과한다면 아마츄어다. 게다가 삼천포로 빠질수도 있다. 

오래전 금융회사 광고를 맡을 때다. 회장이 직접 나와 고객들이 믿을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는 그 회사의 재무건전성이 개선되어 안전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대문짝만하게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강남의 요지에 위풍당당하게 솟아있는 사옥을 비주얼로 채택했다. "체질개선, BIS비율 12.03%"이 우리가 자신있게 제시한 헤드라인이였다. 순간 회장 얼굴엔 당황한 빛이 가득했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을 금융 겜블러로 생각하는 고객들이 많으니 지나치게 자신감이 강조된 헤드라인이나 자화자찬의 비주얼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을 가진 듬직한 금융회사의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몇일 후 집행 된 광고 카피는  "살림이 조금 피었다고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지 않겠습니다. 밤 밝혀 일하는 당신을 위해 환한 웃음으로 집안을 밝히겠습니다. 새 옷으로 옷장을 채우는 대신 희망으로 통장을 채우겠습니다. 금융경쟁력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였다. 광고의 배경 화면은 장바구니를 담은 자전거를 탄 주부가 밝게 웃는 모습이였다. 착한 광고였다. 광고주는 만족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당신은 단계별 접근법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그런데 상대는 골프광이다. 설득의 해법이 보이는가? 상대의 관점으로 옮겨가라. 파5홀에서 티샷이 러프에 빠졌을 경우 우드로 핀을 직접 공략하는 방법과 숏 아이언으로 페어웨이로 탈출한 뒤 핀을 공략하는 방법 중 어떤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인지를 묻는 것이다. SNS의 문장도 광고 카피도 마찬가지다. 상대는 누구인가? 그들의 직책, 나이, 지위, 성별은 무엇인가? 배경은 어떠한가? 전문가인가, 비전문가인가? 사무직인가, 기술직인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CEO에게 직설과 강공의 문장은 먹혀들 리 없다. 유교적인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문장은 곤란하다. 

마찬가지다. 롯데 자이언츠의 새로운 슬로건은 Win the Moment!(순간에 전부를)이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부산갈매기의 정신을 담았다. 매순간 집중력을 잃지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다. 게임의 승리보다 게임의 즐거움을 드리겠다는 약속이다. 열정적인 노력이야말로 의미있는 결실로 연결된다는 믿음은 너나없는 삶의 좌표가 되야한다.

 


김시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융합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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