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상투(常套)와 압축(壓縮)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상투(常套)와 압축(壓縮)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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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오늘도 “ …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정치권 인사들이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나오는 뉴스의 단골 메뉴다. 잘 들어보면 이런 표현이 부지기수다. 스튜디오 안의 앵커가 현장에 파견된 리포터에게 뭘 물어보면 "네 그렇습니다…"라며 추임새 같은 어투로 말문을 열고 후속 보도를 전하는 것도 그렇다. 앵무새가 따로 없다. 맹목과 답습의 전례는 많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연단 위에서 펼쳐진 교장 선생님의 훈시도 그랬다. 늘 비슷한 내용이었다. 열심히 해야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하다가도 하기 싫었다. 사실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인내심을 기르며 체력을 방전시키는 시간이었다. 뙤약볕에 쓰러지는 학생도 있었다. 코피가 잦았던 나는 온몸에 힘을 줘서 코피를 쏟아냈고 천국 같은 양호실에 가서 누울 수 있었다. 여기에 주례사가 빠질 수 없다. “오늘 양가의 뜻깊은 날을 맞아...”,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명심해서 머리 뿌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하객들은 무표정했다. 들어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 아랍 속담에 “그대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은 침묵보다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은 곤란하다. 산뜻하면서도 감응력이 있는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먼저 내용 자체가 새로워야 한다. 당신만의 관점을 세워라. 그다음은 상투적 어휘와 문장의 굴레에서 벗어나라. 어휘의 낯선 결합이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압축과 절제가 가미된 문체다. 간결하고 쉽게 이해시키려면 곁가지를 쳐내야 한다. 말이든 글이든 쓸데없는 장광설은 치명적이다. 

광고계의 거장 브루스 바톤(Bruce Barton)의 이야기다. "언젠가 아버지가 공개회의의 기록자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잘못이다"라고 적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엄청난 잘못이다"로 고치라고 요구했다. 아버지는 조용히 대꾸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적을까 했다. 그러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엄청난"이란 단어를 지웠다(The man nobody knows : A discover of the real jesus). 게티즈버그에서 링컨에 앞서 두 시간 동안이나 연설했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Edward Everett)의 고백을 들어보라. “나는 두 시간 연설했고 당신은 2분간 연설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두 시간 연설이, 묘지 봉헌식의 의미를 당신의 2분간 연설처럼 그렇게 잘 포착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라고 탄식했다. 그는 1,500단어의 연설을 마치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링컨의 연설은 2분간 총 266단어가 사용됐다. 그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라고 요약했다. 당신의 주장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수가 열 가지나 된다면, 판결을 내리는 배심원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리포트나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쉽고 간결한 글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멍석이 깔리면 돌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알맹이에 살을 붙이고 변죽까지 울리면 당초의 의도가 오리무중에 빠진다. 담배를 사 오라고 시켰으면 담배를 내놓거나 늦어진 사정을 말하면 되지 가다 만난 사람들과 가게 위치까지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두 번째다. 당신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친다. 일이 잘 풀리면 자화자찬이고 그르치면 핑계꾼이 된다. 전달력은 상대에게 전할 내용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압축의 기술이다. 잔가지를 쳐내야 골격이 선명해지고 초점이 분명해진다. 

초심자는 한 마디를 열 마디로 늘려 스스로 무덤을 판다. 계체량을 통과한 권투 선수들의 몸매를 보았는가? 들깨를 쥐어짜서 깔때기로 내리면 순도 높은 한 방울의 기름이 만들어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짜고 짜서 엑기스를 남겨야 한다. 잔잔한 물길이 왜 갑자기 격류로 변해 소용돌이치는지 그 원인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것은 헤엄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유사 사례를 들고 문학적 인용을 삽입해서 설득력을 높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적당해야 약이 된다. 지엽적인 설명에 매달리면 방향을 놓친다. 기승전결을 단단하게 묶어서 달리는 열차를 만들어라. 단 핵심은 물고 늘어져야 한다. 퇴고의 과정은 찌꺼기를 걷어내고 엑기스를 얻는 과정이다. 채를 쳐서 거르듯 초심을 확인해라. 의도가 가려지고 본말이 바뀌는 것을 차단해라. 욕심을 버려야 하나라도 건진다. 목적지를 향해 곧바로 달려가라. 접속사를 없애라. 형용사와 부사는 줄여라. 의도는 분명해지고 담백함은 깊어질 것이다. 거듭 전한다. 보태지 말고 잘라내라.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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