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번쩍!하고 불 밝힌 순간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번쩍!하고 불 밝힌 순간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07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정보는 넘치고 선택의 가짓수는 널려 있다. 평범과 식상의 위기는 그래서 온다. 조급함에 쫓겨 다수의 관점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생각의 근육이 부실해져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갇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쉽고 편안하게 떠오른 생각의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그곳이 어디냐고? 당신의 일상이다. 대통령 아니라 누구라도 삼시 세끼를 먹는다. 세수하고 아침먹고 양말신고 집을 나선다. 생활인의 관점이 공감의 지름길이다. 여기에 보탤 것이 있다. 어제 그려 놓은 당신의 족적이다. 이건 누구도 흉내 못 낼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번쩍하고 불 밝히는 순간은 연구실이 아니라 거리를 걷다 찾아온다. 

글도 마찬가지다. 생활인의 언어로 바꿔라. '한 발 앞서 트렌드를 읽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말라. '퍽이 아니라 퍽이 향하는 곳으로 달려 간다'라고 한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인용해라. 스티브 잡스는 이 방면의 대가다. 펩시에 있던 존 스컬리를 스카웃할 때 거창한 비전이나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다. “자네 설탕물을 계속 만들텐가? 아니면 나와 함께 인간의 잠재력을 키우는 일에 헌신해보겠나?”라고 말했다.

점유율 5%에 그친 미미한 판매 성과를 그는 어떻게 바꿔 말해 상황을 역전시켰을까? '우리의 시장 점유율은 자동차 시장에서 벤츠나 BMW가 차지한 점유율보다 높습니다. 그래도 벤츠나 BWW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시장 점유율이 낮아 엄청나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인정받는 브랜드라고 생각하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명품 자동차에 기대며 그들의 등에 슬며시 올라탔다.

후배 카피라이터가 대우 푸르지오 광고 프리젠터로 나섰을 때다. 그녀는 시장 상황이나 프로젝트의 과제로 서두로 꺼내지 않았다. 아파트 정원에서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슴 뭉클한 첫 마디로 입을 열었다. "저는 사랑하는 어린 두 딸을 둔 엄마입니다.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들과 자연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꿈을 꿉니다. 푸르지오 광고 캠페인은 그런 엄마의 소망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딱딱한 전문 용어는 없었다. 그 아파트에 살아 갈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로 풀어갔다.

진짜 전문가는 대중의 언어로 말한다. 생활자의 언어가 일상의 사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속담이나 경구도 같은 역할을 한다. 세월을 지나며 고목의 나이테처럼 검증받은 삶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광고주가 카피를 키워 달라면 디자인 이론을 들먹이지 말고 이렇게 설득해보라. "노자가 말하길 작은 것이 큰 것이요 큰 것이 작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핵심 메시지일수록 작게 표현해야 여백이 생겨 그 존재감이 빛나지 않겠습니까? '산이 불붙는 듯하다'라는 말도 푸른 산에 가을 단풍 한송이가 피었을 때 제격입니다. 서체가 작아야 여백이 생깁니다. 글자가 커지면 주변의 텍스트와 섞여 주목도가 떨어집니다. 주인공이 빛나려면 들러리가 사라져야 합니다. 여백은 보는 사람의 마음 속으로 향하는 화살입니다."라고 말이다.

여기 비만 치료제가 있다. 어떻게 알릴 것인가? 비만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 심장의 구조를 약화시킨다고? 맞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보나 지식이 아니다. 생활 속 이야기다. 비만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보자. 당신의 일상을 연상하면 된다. 많은 광고상을 휩쓴 크리에이터 이광수(55)는 이렇게 정리했다. "허리가 느는 만큼 인생이 줄어 듭니다. 날이 갈수록 양발신기가 힘들어진다면, 허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시는 게 좋습니다. (중략) 살이 늘어지면 삶도 늘어 집니다. 당신은 만능 스포츠맨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직장에서는 시합 때마다 빠지지 않는 스타팅 멤버였습니다. 그런 당신이 이제 휴일이면 소파에 앉아 스포츠 중계만 쳐다봅니다. (중략) 살이 접히면 생활까지 접힙니다. 당신은 모처럼의 백화점 쇼핑에서 기분만 상한 채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이 더 이상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접히는 살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살이 접히면 생활까지 접힙니다. (중략) 거울을 보면, 건강이 보입니다. 거울은 정직합니다. 있는 그대로 당신을 비춰 줍니다. 지금 거울을 보는 당신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어디입니까? 때론 건강하지 않은 몸이 마음까지 시들게 합니다. 다시 건강을 되찾아야 할 몸매를 위해, 보다 분명하고 과학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비만의 문제는 양말을 신고 거울을 볼 때 리얼하게 다가온다. 알고 보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다. 생활의 이야기로 바꿔라. 스펀지같이 스며들 것이다.

 


김시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