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한결같은 사람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한결같은 사람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23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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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는 학교 도서관 신세를 톡톡히 졌다. ‘융복합미디어와 대중문화론’을 강의하며 개인주의와 디지털 세상의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한 철학적,사회문화적 관점을 제시하는데 학교에서 빌린 책들이 많은 도움을 준 것이다. 위트있는 문체로 철학자들의 사유가 서술된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책은 인기가 많아 핫북 코너에 진열되어 있었다. 이 코너의 책들은 ‘일주일 반납’ 규칙이 있다. 한달에 60권의 책을 빌릴 수 있는 교수나 학생이나 이 코너에 진열된 책을 빌리면 똑같이 일주일안에 반납해야 한다. 버스와 지하철을 오가며 골자 위주로 부지런히 읽고 돌려 줘야 했다. 개선책이 없냐고 따지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 어쩔수 없다고 했다. 많이 찾는다면 몇 권 더 사놓으면 될 일인데 책 구입을 아끼는 대학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걸 몇 번 반복하다보니 새로운 깨달음이 생겼다. 이 코너의 책을 빌리면 등 떠밀려 억지로라도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일주일간의 반납기간이 독서를 재촉하는 채찍이 된다.

권투 선수가 홈링의 이점을 살리듯 세상의 규칙을 자신을 끌어올릴 계기로 활용해서 발전의 동력을 마련해보시라. 스스로를 사선에 세워 정신력과 실천력을 높이는 지혜다. 연초에 세우는 한해의 다짐과 같은 이치다. 스스로의 약속은 실천을 위한 각성제가 되고 촉매제가 되어 발전의 계기로 작동한다. 특히 비지니스맨의 약속은 동료나 파트너간의 신뢰를 확인하는 출발점이다. 출근 시간을 지키고 업무비를 과용하지 않는 버릇과 습관은 개인적 차원에서 인성과 도덕성을 시비할 문제만은 아니다.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초에 모두가 합의한대로 생각하고 움직여서 목표를 이뤄내겠다는 인장이요 낙관이다. 조직인의 약속은 첫 발을 내딛을 때의 마음 초심을 지키는 일이다. 이걸 지키는 사람에기 내려지는 훈장이 있다. ‘한결같다’는 주위의 평가다. 파트너의 입에서 이런 말이 오르내리면 두 사람의 관계에 파란색 신호등이 켜졌다고 봐도 좋다.

제일기획 재직때 일이다. 당시 기획본부장이셨던 임대기 상무(현 대한육상연맹회장)가 클라이언트인 삼성생명 임원과의 저녁회식에 참석하라고 갑자기 불렀다. 담당 팀장이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이지만,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있었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군말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띠웠다. 회식이 끝날 무렵 어디로 가느냐는 광고주 임원의 물음에 강원도에서 휴가중이였고 버스가 끊겨 다음날 새벽에 가려한다고 대답했다. 광고주는 알았다면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미안해했다. 그리고 돌쇠처럼 우직해서 좋다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본부장께선 택시를 불러 자면서 가라고 했다. 이 때 회사 경비로 처리된 24만원의 택시비는 지금까지 제일기획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광고주의 격려와 본부장의 배려는 광고주의 만족도를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결과였다.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온다. 몇가지의 약속을 가슴에 담아 볼 시간이다. 꼭 이뤄지길 바란다. 그러나 설령 시간이라는 훼방꾼이 우리의 기억을 지워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해도 무의미하진 않다. 꿈꾸는 사람만이 꿈을 닮아 갈 것이다.

 


김시래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롯데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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