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일본, 그리고 한국 최초의 라디오 CM 송

[신인섭 칼럼] 일본, 그리고 한국 최초의 라디오 CM 송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3.06.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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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1951년 9월 1일 <중부 일본 방송>과 <신일본 방송>의 두 민간방송 개국과 함께 일본 최초의 라디오 CM송이 등장했다. 고니시로꾸 사진 공업(小西六寫眞工業) 제공 프로그램에 <나는 아마추어 카메라맨>으로 작사, 작곡자는 삼목계랑(三木鷄郞. 이름의 발음 모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랄 일은 이 광고의 스폰서인 <고니시로꾸>라는 카메라 회사 이름이나 <사꾸라 필름>이라는 제품명조차 없는 광고였다. 왜? 청취자의 반발을 염려하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민간방송에서 광고가 나오는 것을 모르던 민방 초기인지라 밖에서 라디오에 광고가 나오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부인에게 <이봐요 그 장사꾼 쫓아 버려> 하던 시대였느니. 다만 노래는 히트가 되어 한 때 누구나 입에 오른 노래가 되기는 했다. 가사를 옮긴다.

나는 카메라맨 멋진 카메라 둘러메고

귀여운 아가씨 양지바른 곳에 세우고

앞에서 옆에서 쳐다보면서 이쪽 보세요. 저쪽 보세요

찰깍하는 멋은 있지만 

일본 최초의 라디오 CM 송
일본 최초의 라디오 CM 송

상품 이름과 스폰서 이름조차 없이 방송하던 광고는 차차 넌지시 둘러서 상품과 회사명을 표시하는 광고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광고 없는 공영방송 NHK에 젖어 왔고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에서 시작된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광고란 사치를 방조하는 나쁜 것으로만 인식되었으므로 해방 이후에도 그런 의식이 남아 있었다. 방송 매체사는 청각에 호소하며 손쉽게 상상력, 정서에 호소하고 반복성이 강한 라디오 광고의 힘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초기 민방 청취자의 여론과 광고 방송 혐오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일본 시계 시장을 독차지하고 1964년 일본 최초의 올림픽 시계 스폰서가 된 대기업 세이코(Seiko. 지금의 핫토리 시계)의 라디오 광고도 그런 광고 가운데 하나였다.

세이코사의 시계가 지금 10시를 알려 드렸습니다.

불조심하시고 문 단속 하신 후

기상 하실 시간 벨 장치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주무십시오.

마치 공익광고의 일부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으로 정중하게 사회자와 아나운서가 대담하듯 광고 카피를 읽어 나갔다.

민방 개시 2-3년이 지난 후 민방 제창 선두에 섰던 광고회사 <덴츠>, <동경 방송>, <일본문화방송> 3사는 동경에서 청취자 조사를 했다. 라디오 CM에 대해 30%는 관심이 있었고 50%는 무관심, 10%는 반발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 조사보디 1년 전의 조사에서는 광고를 듣고 나서 사고 싶은 생각이 생겼다는 대답이 40%, 실지 상품을 샀다는 답은 23%에 이르러 민방 라디오 초기의 광고에 대한 여론을 알 수가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전 후 6년간의 점령군 맥아더 사령부(흔히 GHQ로 부름)의 일본 민주화 정책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 정착이었다. 그 일환으로 도입한 것이 민방이었다. 일본의 방송광고는 해방 전 1930년대에 당시 일본 식민지이던 대만과 만주에서 실시되었다. 그러나 일본 본토와 <조선>에서는 민방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도 그랬듯이 광고 수입 감소를 우려한 신문의 반발 때문이었다. 물론 해방 이후에도 같은 우려는 있었으나 일본은 신문과 방송 겸영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 덴츠가 발행한 <일본광고발달사> 하권(1980년 발행) 민방 관련 부분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한국에서 민방 라디오 광고 개시는 1959년 4월 15일에 개국한 부산MBC였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라디오 CM송 진로 CM이 전파를 타고 퍼져 나갔다.

작사 손권식, 작곡 허영철은 남아 있지만 언제 어떻게 이런 CM을 제작해서 방송했는지 등 자세한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그까짓 라디오 광고 따위"이니까. KBS TV가 돈이 없어 방송광고를 시작한 1963년에 방송한 첫 광고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른다. 겨우 강현두 교수가 언급한 부롬빈이라는 것 뿐이다. 언제, 누가 어떻게 헤서 얼마를 받고 첫 광고를 방송했는지 기록이 없다. (혹은 내가 모른다.) 일본과 미국에는 첫 광고에 관해 자세한 기록이 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해방 이후에 시작한 민방 초기 일본과 대비해도 광고 무시는 한국과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라디오 CM 송, 진로
한국 최초의 라디오 CM 송, 진로

그 첫 책임은 광고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러나 돈 받고 광고를 방송, 게재하는 매체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사, 보도, 광고 따지지 말고 좀 더 모든 것을 평등하게 살피고 연구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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