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시와 제14차 서울의 아시아 광고회의

[신인섭 칼럼]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시와 제14차 서울의 아시아 광고회의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3.07.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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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아시아 등촉(燈燭)

켜지는 날엔 동방의 빛」

동아일보 지상을 통하여

타옹(타翁)이 조선에 부탁

[ 신인섭 매드타임스 대기자]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 2면에 실린 머리기사의 일부이다. 인도의 시성(詩聖)이라 일컫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가 일본 동경에서 만난 동아일보 기자에게 써 주면서 조선 국민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한 시의 일부이다. 한국어로 옮겨 신문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다. (원문 그대로):

일즉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든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 커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비치 되리라.

1929.3.28. 라빈드라낫, 타고아

이튿날 육필로 쓴 그의 글과 영문으로 타자한 글이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다.

I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Rabindranath Tagore

동아일보 1929년 4월 2일 및 4월 3일 보도
동아일보 1929년 4월 2일 및 4월 3일 보도

타고르가 이 시를 쓴 1929년 인도는 아직 영국 통치하에 있었고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조선과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이 시를 읽어 보면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해 6월 13일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타고르가 신병 때문에 조선에 가지 못하게 됨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그의 글이 보도되었으며 조선 방문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기사는 「조선행 중지된 실망은 2천만 동포를 일흔 듯」이란 머리 기사로 보도되었다.

동아일보 1929년 6월 13일 보도
동아일보 1929년 6월 13일 보도

타고르의 시와 1984.2.9 인도 캘커타에서 있은 아시아 광고회의 판촉 나는 한국이 최초로 주최한 국제광고회의인 제14차 아시아 광고회의 사무총장직을 할 때였다. 원해서 맡은 일은 아니었다. 회의는 84년 6월 18-21일 장소는 서울역을 내려다보는 힐턴 호텔 국제회의장이었다. 한국 광고계 최초의 행사였다. 예산도 빠듯하고,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사람도 드물던 시절이라 대개 세 사람이 팀을 이루어 판촉 방문을 하는데 나 혼자였다. 어떤 국제 회의든 성패의 최종 평가는 참가자의 수이다. 중국과 배트남 등 공산권 국가와는 아직 국교 관계가 없던 시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태국, 파키스탄, 홍콩 등 아시아의 주요 6개국을 순방하기로 했다. 대만과 일본은 의례 아시아 광고회의에 참가하는 국가여서 다른 분에게 맡겼다. 물론 영어라는 언어가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말은 쉽지, 나이 50대 중반에 한국 최초의 국제광고회의 성패의 책임을 맡았다는 심리적 압박이 있었다. 빼꼭하게 짜인 일정에 할 일은 많고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은 없는 외로운 여행이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 소니가 만든 소형 포켓 녹음기를 사서 틈틈이 하루 일정의 기록을 남겼다.

방문할 6개국은 유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및 기독교의 5개 종교가 관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거의 모두 전 영국 식민지였다. 프리젠테이션의 시작이 매우 중요하므로 가는 곳마다 방문국과 한국의 문화 관계를 찾았다. 가장 신경을 쓴 곳은 인도로 아직 봄베이로 부르던 뭄바이, 뉴델리, 캘커타의 세 군데를 방문해야 했다. 봄베이와 뉴델리는 J. 월터 톰슨 네트워크의 도움이 컸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가 캘커타였다. 유일한 실마리는 시성 타고르가 보낸 동아일보 기사였다. 서두 인사가 끝난 뒤 나는 타고르의 In the golden age of...를 암송하듯 읽었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발표가 끝나고 만찬이 이어졌다. 가장 먼지 인사를 한 분이 캘커타에서 유명한 신문으로 1922년에 창간한 Ananda Bazar Patrika 편집국장이었다. 이야기는 그가 만난 동아일보 감상만 회장, 서울대 신문대학원의 김규환 교수로 이어갔다. 인도에서 서울 광고회의에 온 사람은 50명(?)쯤이었다. 놀라운 일은 봄베이 모임에서 알게 된 일인데 인도 그리고 세계 최대의 영자신문 사장이 인도 광고계를 대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캘커타에서 겪은 일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인도의 광고계를 수박 겉핥기나마 공부하게 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이미 20년대에 JWT, Ogilvy가 진출해 있었고 수많은 인도의 광고회사가 있었다. 모두 광고 선진국 영국 제도를 배운 광고회사였다. 인도는 1948년 아시아 최초로 ABC 제도를 도입한 나라이다.

1992년 소련 공산주의 붕괴 이후 인도는 시장경제로 돌아섰다. 지금 인도는 광고비 두 자리 성장을 구가하고, 149억 달러의 광고비로 세계 9위의 광고시장이 됐다. 간디와 네루의 나라이며 몇 안 되는 핵보유국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마크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6월 하순 바이든 대통령의 국빈 초대와 상하 양원 연설의 초대를 받은 모디 수상의 나라이기도 하다.

제14차 아시아 광고회의 기록 표지
제14차 아시아 광고회의 기록 표지

한국이 처음으로 주최한 국제 광고회의인 제14처 아시아 광고회의는 대성공이었다.

인도가 영국 통치하에 있은 것은 89년이었다. 그러나 동인도 회사의 지배 기간을 합치면 190년이었다. 타고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1931년 그의 나이 62세 때였다. 그의 시가 노래한 「아시아의 등촉 조선」에 다시 불이 켜진 것은 이 시가 동아일보에 게재된 16년 후인 1945년이었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일본이 유일하던 선진국 리스트에 한국 이름이 오른 것은 2021년이었다.

지금 미국의 여성 부통령 모친은 인도인이다. 그리고 영국 총리 역시 인도인이다.

 


신인섭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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