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1968년 제6차 아시아 광고회의 여담과 진담: South Korea라 부르면 위법. 소련 대사관 침입(?) 그리고 55년 뒤 서울의 아시아 광고대회

[신인섭 칼럼] 1968년 제6차 아시아 광고회의 여담과 진담: South Korea라 부르면 위법. 소련 대사관 침입(?) 그리고 55년 뒤 서울의 아시아 광고대회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4.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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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1968년 국제회의, 두 가지 낙수(落穗. 여담)가 있다.

1968년 6월 26일~29일. 4일간의 제6차 아시아 광고회의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은 미국인 1명을 포함해 9명이 대표단을 구성해 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런 일은 해방 이후 처음이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신문사 광고국장이 5명, 과장급이 1명이었고 필자를 포함한 기타 관련자가 3명이었다. 9명 가운데 절반은 첫 바깥나들이였을 것이다.

1958년에 도쿄에서 시작된 아시아 광고회의는 격년 회의로서 아시아에서 유일한 광고회의였고 2회까지는 일본, 그 뒤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돌아가며 주최했다.

한국을 South Korea라 부르면 위법  개회식에는 각국 대표의 입장식이 있다. 국기와 나라 이름을 표시한 영문 피켓을 든 여학생이 앞장서서 입장했다. 이 무렵 한국이 해외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가할 때, 영문은 반드시 Republic of Korea로 표기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흔히 South Korea로 불렀고 표기도 그렇게 했다. 우리도 한때는 분단된 독일을 서독, 동독이라 불렀듯이. 쿠알라룸푸르 회의도 주최 측이 이런 것을 알 리가 없고 South Korea로 썼다. 그런데 일행 중 이 표기를 보고 Republic of Korea가 잘못 표기된 것을 발견했는데, 입장식은 시작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초였다. 기지를 내서 스카치테이프로 South를 가렸다. 화는 면했으나 모양새가 좋지는 않았다.

두 장의 사진 가운데 각국 대표가 앉은 단상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피켓을 든 학생과 국기가 있는 사진에는 South를 가린 것이 분명히 보인다.

각국 대표가 앉은 단상과 피켓을 든 여학생. 태극기와 SOUTH를 가린 KOREA가 보인다.    
각국 대표가 앉은 단상과 피켓을 든 여학생. 태극기와 SOUTH를 가린 KOREA가 보인다.    

소련 대사관 침입(?)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신문사 국장급 인사들로 대표단을 구성해서 참가한 회의인지라 한국 대사관을 예방하게 되어 있었다. 9명의 일행이 3대의 택시를 타고 한국 대사관으로 들어섰다. 나는 영어를 하기 때문에 맨 앞차 운전기사 옆자리에 타고 있었다. 그런데 대사관 입구의 문기둥을 보았더니 CCCP란 글이 눈에 띄었다. 이북에서 해방 후 대학에서 영어는 없어지고 러시아어를 배운 터이라 이 건물이 소련 대사관임을 알고 운전기사에게 급히 차를 돌려 나가라고 했다. 뒤에 있던 두 대도 돌려 나왔다. 밖에 나가서는 차를 세우고 기사에게 물었더니 틀림없이 이 건물이 한국 대사관이라 했다. (뒤에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일은 무사히 끝났지만, 하마터면 한국 신문사 국장 일행이 소련 대사관에 침입했다는 말이 나올 뻔했다. 지금도 그 CCCP(러시아로는 에스 에스 에스 아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란 러시아 말 잊히지 않는다. 다행히도 사반세기 지나 CCCP는 사라졌다. (하기야 지금도 중국 공산 대회에서는 빨간 바탕에 망치와 낫 그림이 남아 있다.)

진담 하나  제6차 아시아 광고회의에서는 이상 두 가지 여담 외에 진담이 있었다. 진담을 간추려 말하자면, 이 4일간의 쿠알라룸푸르 아시아 광고회의는 광고 행사로서는 개화기 일본에 다녀온 “신사 유람단” 같았다.

한국 광고계 중진들이 처음으로 한국 바깥 광고의 세계를 보았고 느꼈다. 당시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회의 첫날 말레이시아 부수상이 풍성한 만찬을 주최했고 놀라운 연설을 했다. 한국 바깥 광고계 인사들의 연설 내용은 한국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보고 들은 말은 많았다. 그 결과 이들은 귀국 후 놀라운 바깥 세계의 광고산업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신문사는 물론이고 그 밖의 관계 기관에 돌렸다.

회의 기간에 국제광고협회(International Advertising Association) 한국지부 창설증 전달식이 있었다. IAA 한국 지부는 1970년대 한국 광고의 국제화에 지대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광고회의는 그 뒤 한국 대표가 꼭 참가하는 국제회의가 되었다.

IAA 한국지부 창설증 전달식
IAA 한국지부 창설증 전달식

55년 뒤 서울 아시아 광고대회(AdAsia) 여담과 진담을 남긴 쿠알라룸푸르 아시아 광고회의가 끝난 55년 후 2023년 10월 24일 ~ 27일에는 서울 COEX에서 한국이 세 번째로 주최한 아시아 광고대회가 열렸다. 알찬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매체 효과 자료가 가장 뒤진 한국 옥외광고 산업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대회 셋째 날에는 세계 옥외광고협회 회장이 옥외광고 매체 효과 조사의 최근 상황에 대해 연설을 했고, 그 실황 세부를 다른 연사들이 발표했다. 한국 옥외광고 변화의 때가 온 것을 알렸다. 

그러고 보면 국제 회의란 진담과 여담의 뒤섞기는 훌륭한 장터이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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