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1926년 한국 최초의 현상 도안광고 (懸賞圖案廣告) (3)

[신인섭 칼럼] 1926년 한국 최초의 현상 도안광고 (懸賞圖案廣告) (3)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03.25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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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1월 3일자 첫 번째 현상도안광고 사고
1926년 11월 3일자 첫 번째 현상도안광고 사고

동아일보에 “본보에 게재할 현상 도안광고!(本報에 揭載할 懸賞圖案廣告)”라고 큼직한 글자로 쓴 사고가 나왔다. 1926년 11월 3일이었다. 7일에는 2차 발표, 12일에는 내용 일부 변경 사고가 나왔다. 드디어 11월 13일에는 4면과 5면 두 면에 걸쳐서 모두 45개 회사 광고가 게재됐다. 그 크기는 광고 하나에 2단 6cm였다. 하루 6면이 발행되던 무렵이니 이 정도면 괜찮은 크기다. 4면 구석에는 투표용지가 있는데, 도안이 잘된 광고주 1개 회사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투표자의 이름과 주소를 같이 적어 2전 우편엽서에 붙여서 동아일보사 광고부에 보내게 되어 있었다. 상은 1등 1명, 2등 2명, 3등 5명, 4등 10명인데, 1등은 축음기와 레코드 10장, 2등은 스위스제 회중시계, 3, 4등은 동아일보 구독권 2개월 및 1개월 분이었다.

1926년 11월 13일자 현상도안광고(懸賞圖案廣告). 신문 2면에 45개 참가회사 광고가 있다. 수상한 3개사는 빨간 테두리로 표시했다.
1926년 11월 13일자 현상도안광고(懸賞圖案廣告). 신문 2면에 45개 참가회사 광고가 있다. 수상한 3개사는 빨간 테두리로 표시했다.
1926년 11월 13일자 현상도안광고(懸賞圖案廣告). 신문 2면에 45개 참가회사 광고가 있다. 수상한 3개사는 빨간 테두리로 표시했다.
1926년 11월 13일자 현상도안광고(懸賞圖案廣告). 신문 2면에 45개 참가회사 광고가 있다. 수상한 3개사는 빨간 테두리로 표시했다.

놀라운 것은 투표자의 수였다. 13,508표인데, 동아일보 사사(社史)에 따르면, 1924년 부수는 2만 부를 넘었다. 따라서 적어도 약 65%의 독자가 투표했다는 추산이 된다. 11월 30일에는 수상자의 이름과 주소와 함께 당선한 광고주가 발표되었는데, 1등에 경성방직회사(京城紡織會社), 2등은 동아부인상회(東亞婦人商會), 3등은 화평당(和平堂) 제약회사였다. 한국 최초의 (도안)광고상에 참가한 회사 45개사 가운데 17개사는 일본회사인 것이 확실하나 당선된 회사는 없었다. 당선된 3개 회사에 대한 전면 홍보 기사는 12월 10일에 게재되었다.

1926년 11월 30일 당선 발표
1926년 11월 30일 당선 발표
1926년 12월 10일 당선 3개사 홍보 기사. 맨 위의 1단은 '도안광고'라는 제목으로 행사 개최 목적과 결과에 대한 해설 기사가 있다.
1926년 12월 10일 당선 3개사 홍보 기사. 맨 위의 1단은 '도안광고'라는 제목으로 행사 개최 목적과 결과에 대한 해설 기사가 있다.

동아일보사가 이 행사를 주최한 취지는 첫 번째 사고와 수상 회사 홍보 기사 페이지 맨 위에 있는 1단 기사 도안광고(圖案廣告)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한문이 압도적이던 그 무렵 첫 번째 사고와 수상사 홍보 기사, 그리고 수상자 발표는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서 행사의 목적이 지식층인 신문 독자 외에도 한문을 모르는 계층도 아울러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한글로 된 사고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고쳤다.)

광고의 글과 도안과 문안 여하에 따라서는 하나의 비용으로 둘의 효과도 얻을 수 있는 것이요 둘의 비용으로 하나의 효과도 얻지 못하는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선진한 여러 나라에서는 어지간한 상점이면 전문지식을 가진 도안가를 둔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의 광고계는 한심할 만치 유치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계획하는 바가 조선 광고계의 장래를 위하여 한 걸음 두 걸음씩 발전함에 한 조각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말이다. 아쉬운 일은 이 행사가 무슨 이유인지 1회로 끝났다는 사실이다. 12년 뒤인 1938년에는 상업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다 전문적인 포스터와 신문도안광고 모집 행사가 시작되어 폐간당한 1940년까지 3회 계속되었다. 해방 후 신문광고상이 부활한 것은 1955년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행사가 있었으나 단명에 끝났다. 1964년에 조선일보가 조일(朝日)광고상을 창립했는데 이 상은 한때 도안가, 지금 디자이너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그 뒤 여러 신문사가 주최하는 광고상은 부쩍 늘었다.

4월 1일이 되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동아일보가 94년 전에 주최한 도안광고상은 한국 신문의 역사와 광고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기록했다. 특히 관련된 기사 모두(제목과 고유명사 등 제외)를 한글로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방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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