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잘 이별하는 법...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꿈과 잘 이별하는 법...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 안소현
  • 승인 2022.0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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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흔한 씬 하나.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취준생의 얼굴.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는 고시생의 얼굴.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춤 연습을 하는 연습생의 열굴. 청춘들의 얼굴을 비추며 성우는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들의 얼굴에 흐르는 땀은 어쩐지 반짝이고, 만약 그게 맥주 광고라면 그들은 마지막에 맥주잔을 호쾌하게 부딪칠 것이다. 뭐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게 맥주가 아니라 비타민 음료라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서바이벌 오디션의 흔한 씬 또 하나. 

자신에게 이 꿈이 왜 소중한지 이야기하는 참가자의 자료화면이 지나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잠깐의 침묵.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는 참가자. 

아쉽게도 참가자의 간절함과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불합격 통보에 눈물짓는 참가자. 격려해주는 심사위원들.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인터뷰와 함께, 참가자는 무대를 내려가지만, 카메라는 더 이상 그를 따라가지 않는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모두가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늘 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노력은 성과에 비례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일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대부분의 우리 인생은 성공보다 실패에 가깝고, 화려하기보다 남루하다. 스포트라이트가 우리를 비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꿈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 꿈과 잘 이별하는 방법이 아닐까. 

사진출처: ntv 홈페이지

‘콩트가 시작된다’는 아주 드물게도, 10년 동안 간직해 온 꿈과 잘 이별하는 이야기. 줄거리는 간단하다. 하루토, 쥰페이, 그리고 슌타. 고등학교 친구인 이들이 만든 콩트 그룹 맥베스. 10년간의 별 볼일 없었던 활동을 끝으로 해체한다. 

끝. 거기에 맥베스의 하나 밖에 없는 열혈팬 나카하마와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는 나카하마의 여동생 츠무기가 얽힌다. 그렇다 해도 그 안엔 거창한 이야기도, 반전도, 러브라인도 없다. 진짜 우리 인생처럼 하찮고 보잘 것 없다. 그렇기에 더욱 애틋하다. 라마 1회를 처음 재생하면, 난데없이 등장하는 조악한 무대와 어설픈 소품, 그리고 재미없는 맥베스의 콩트 공연에 당황하게 된다. 이건 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관리가 힘들다. 그냥 보지 말까 하는 생각도 잠깐. 콩트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기서부터는 멈출 수 없다. 특히, 1회 엔딩을 보고나서는 어렴풋이 느낌이 온다. 이거 어쩌면 인생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고. 

각 회차의 제목은 그 회에 처음 등장하는 콩트의 제목. 콩트의 내용은 묘하게 그 회차의 내용과 연결된다. 그렇게 드라마를 계속 보다보면, 10회 첫 장면에 나오는 콩트를 보면서 울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어이없는 분장에 말도 안 되는 개그를 하고 있는 세 명의 모습이 내 친구의 모습 같고 내 모습 같다. 우리 모두 무언가를 포기해본 적이 있기에 그들의 마지막 공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표정관리가 힘들다. 이번에는 웃으면서 운다. 

“우리들은 실패한 게 아니야. 시간이 끝났어. 축구에도 시합시간이 있잖아? 졌다는 게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해.”

“‘인생은 콩트와 같다’라는 흔해빠진 얘길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본 인생이 한심한 콩트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드라마 작가를 꿈꾼 적이 있었다. 야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대본을 썼다. 꾸역꾸역 쓴 대본을 공모전에 내고 발표날을 기다리며 아주 오랜만에 부풀어 오르는 내 마음을 보았다. 이젠 그저 쪼글쪼글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줄만 알았었는데. 그 기분이 참 좋았다. 8명 공동집필이긴 하지만 제작사와 계약했을 때는 꿈이 거의 이뤄진 줄 알았다. 눈을 감고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박혀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내 꿈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꿈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안고 가지도 내려놓지도 못한 채 꿈의 무게에 내 어깨가 짓눌렸다. 그때 알았다.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구나.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그 무렵 일본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일본인 동료가 나에게 일본어 표현 하나를 알려줬다. ‘쇼가나이(しょうが無い)’ 번역하면,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없다’.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체념’의 정서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쇼가나이. 그냥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뿐이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게 인생이야. ‘쇼가나이’라는 말은 어쩐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언젠가는 광고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고, 사랑은 끝내 실패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하는, ‘콩트가 시작된다’ 같은 이야기. 스토리보드는 간단하다. 하루토, 쥰폐이 그리고 슌타 같은 주인공들의 얼굴을 비추며 성우가 따뜻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거다. ‘어쩔 수 없지 뭐. 포기해도 괜찮아.’ 

 


안소현 Wieden and Kennedy Tokyo 카피라이터

※ 한국광고총연합회 발간 <ADZ> 칼럼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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