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reative] 크리스마스의 마법

[Global Creative] 크리스마스의 마법

  • 이희정
  • 승인 2021.12.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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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념일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닙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념일에 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이벤트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요. 생일도 365일 중 하루일 뿐인데 태어난 날이라고 축하받으면 쑥스럽기도 하고 마냥 편하지가 않습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리액션을 해도 보통 사람들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좀 건조한 편이에요.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의 특별한 날을 그냥 넘기지는 않지만 상대방이 기대하는 정도로 잘 챙겨주는지는 모르겠어요. 의도치 않게 서운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합니다. 크리스마스 영화도 좋아하고 크리스마스 소설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캐럴은 시즌이 아닐 때도 가끔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수없이 많은 광고 중에서 올해는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기대하는 선물 같은 크리스마스 캠페인도 있지요. 네, 다들 아시는 영국의 ‘존 루이스 앤 파트너즈’의 바로 그 크리스마스 광고입니다.

저는 올해 광고를 보고도 또 울고 말았네요. 따스하고 애틋하고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새롭습니다. 제목은 ‘Unexpected Guest’ 번역하면 뜻밖의 방문자 혹은 손님 정도이겠죠?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흑인 소년 ‘네이선’이 버스를 타고 하교하고 있습니다. 버스 의자에 앉아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봅니다. 무언가 연기를 내며 그의 동네 뒤의 숲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이상하게도 버스 안의 누구도 밖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네이선은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숲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난파한 우주선에서 홀로 있는 외계인 소녀 ‘스카에’를 발견합니다. 가슴에 빛나는 장치가 달린 우주복을 입은 마치 눈의 여왕처럼 창백하고 여리여리한 소녀를 보고 네이선은 당황하여 도망칩니다.

네이선의 집에서는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입니다. 가족들은 트리도 장식하고요. 네이선은 뜻밖의 방문객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숲으로 가죠. 경계하는 그녀에게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 달아야 할 별 장식을 달고 다가갑니다. 지구인과 자신에게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된 스카에는 그제야 마음을 열게 되죠. 그녀가 우주선을 수리하는 며칠 동안 네이선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강아지를 데려가 함께 놉니다. 집에서 쿠키를 몰래 숨겨와 함께 나눠 먹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을 보여주기도 하죠. 마침내 우주선 수리를 마치고 자기 별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네이선은 크리스마스 별을 선물합니다. 우주선이 떠나간 하늘 위에 ‘For a Christmas as magical as your first’ 라는 자막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맨 첫 크리스마스의 마법 같은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 카피를 보기 전까지는 단순히 외계인 소녀와 지구인 소년의 우정을 크리스마스에 녹인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역시 존 루이스는 배신하지 않아, 정도의 감상이었는데요. 카피에서 올해의 존 루이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첫 번 째’와 ‘마법’ 두 단어에 있다는 것 깨닫게 됐어요. 지구라는 낯선 별에 불시착한 소녀, 그녀는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죠. 네이선은 어려움에 처한 소녀에게 먹을 것과 따스한 온기를 선물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 과정 자체가 마법이죠. 흑인 소년과 백인 소녀가 등장한 건 다양성이 정치적 올바름을 위한 장치일 테지만 그런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도 있었을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그 마법을 전하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메이킹 필름에는 두 배우와 광고주, 제작진의 인터뷰도 나와 있으니 함께 보시기를 권합니다. 광고주와 제작진 모두 존 루이스의 크리스마스 광고가 지닌 의미와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갖고 프로젝트를 완성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즐겁게 작업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도 현장에서 좀 더 웃을까 봐요. 

2011년 ‘The long wait’편도 오랜만에 보시면 어떨까 싶은데요. 다른 해에 나온 캠페인들도 좋았지만 저에게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광고입니다. 달력을 보면서 초조해 보이는 소년,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으니 부모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봅니다. 크리스마스 아침 눈을 뜬 소년, 준비한 선물을 부모님에게 선사합니다.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 귀엽고도 간절한 마음에 영상을 볼 때 마다 눈물이 납니다. 

2021년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코로나로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함께 마음 편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오미크론’이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변이의 이야기가 들립니다. 오랜만에 만남의 약속을 잡으면서도 마음 한편 불안감이 스며듭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건 크리스마스의 마법이겠죠? 여러분 모두에게 마법 같은 크리스마스가 펼쳐지길,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 가득하길 빌며 말해 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이어.

 


이희정 CD 빅밴드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본부 

※ 한국광고총연합회 발간 <ADZ> 칼럼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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