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본질도 뒤바뀔 수 있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본질도 뒤바뀔 수 있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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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1980년대 미국 최고의 인기 코미디 시트콤이었던 <코스비 가족>을 보면 가끔 주인공인 닥터 코스비가 자동차 정비소의 직원이 입는 듯한 작업복을 입고 나타나는 때가 있다. 가구를 직접 만들려고, 혹은 가전제품을 수리한다고 작업대와 망치, 드릴, 스패너들을 벽에 걸어 놓은 작업실에서 애를 쓰다가 결국 모든 것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미국에서 그런 작업실을 가진 이들을 꽤 보았다. 보통 차고(garage)를 자신만의 작업실로 쓰곤 한다. 차고에서 시작했다는 기업들이 많은 까닭이 있다. 한국의 기옥에는 차고가 없어서 혁신 기업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실없는 농담까지 나오곤 했다.

출처 홈디포 홈페이지
출처 홈디포 홈페이지

그런 작업실을 가진 사람들에게 구멍을 뚫을 때 쓰는 드릴을 소재로 한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은 ‘왜 00 브랜드의 드릴을 샀는가?’였다. ‘선반을 올리기 위하여 벽에 구멍을 뚫어야 했다’, ‘못을 깊숙이 박기 위해서’, ‘옷걸이를 걸기 위해서’ 등등의 답이 나왔다. 그런데 왜 특정 브랜드였는지에 대한 답은 잘 내지 못했다.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니 구멍을 뚫어야 하는 작업 이전에 드릴을 산 경우가 많았다. ‘드릴을 사고 보니 구멍을 뚫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럼 00 브랜드의 드릴은 왜 샀는가? 대형 철물점 같은 곳에 갔다가 드릴이 보여서 그냥 갖고 싶어 샀다고 결론이 나왔다. 거의 자동으로 구매 행동이 이루어졌다. 수리 도구들을 파는 대형 상점에 주말마다 가고, 들어가기만 하면 정신을 못 차린다는 남자들이 허다하다. 이들은 멋진 드릴을 보고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들이고, 드릴을 가지고 집에 와서 구매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드릴을 사용할 일들을 일부러 만든다. 그리고 설문에는 순서가 뒤바뀌어 드릴의 필요성을 먼저 들이댄다.

망치를 든 자에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재미교포 친구 하나의 신혼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벽에 그림을 거는 걸 도와주는데, 못과 망치를 가지러 간 친구가 한참 동안 오지 않았다. 찾으러 가니 그 친구의 도구함에는 다양한 색상과 크기의 못들이 질서정연하게 들어 있었고, 친구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못들을 보고 있었다. 친구의 부인이 옆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상하게 못 욕심이 많아요.” 그가 그림을 거는데 필요한 못을 고르고 있다고 했는데, 그에게 못은 수집품으로서 더욱 가치가 있었다. 그림을 거는 건 그다음이었다.

설문조사를 해서 나오는 결과는 앞뒤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한 꺼풀만 더 파고 들어가면 상식이나 고정 관념과 어긋나버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언제 먹고 싶냐 혹은 먹는지 물으면 대개 날이 덥고, 햇빛이 강렬할 때 등등의 상황을 말한다. 그런데 유럽에서 아이스크림 소비 1~3위는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의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상황과는 거리가 먼 환경의 국가들이다.

골프를 치는 젊은 층, 특히 여성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에 한 번이라도 골프장을 찾은 골프 인구 중 20대는 26만 7000명, 30대는 66만 9000명이었다고 한다. 각각 2019년 대비 92.1%, 30.7% 증가한 규모란다. 골프클럽 매출의 40%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골프웨어에서의 비중은 더욱 크다. 그들에게 골프를 치는 이유를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까? 이전 골퍼들과는 달리 인증샷을 찍으러, 그래서 골프웨어를 입기 위하여 골프를 친다고 한다. 예쁜 옷을 입고 찍기 위한 무대 장치로 골프를 치러 몇 시간 길도 마다 않고 달린다. ‘스코어보다는 인증샷’, ‘드레스 코드는 모르지만 어쨌든 튀는 패션’을 말하는 젊은 골퍼들을 두고, 골프의 매너와 전통 등 본질의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까.

“너희들에게는 시계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어느 탈레반이 쫓겨가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탈레반의 언행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음미해 볼 만한 말이다. 결국은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란 의지를 시간이란 본질과 그런 시간을 보는 도구에 불과한 시계를 차고는 승리했다고 자부하는 이들을 비교했다. 그런데 이 말도 시계의 본질이 바뀌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보다 패션 상품으로써 쓰이고 있지 않은가. 스마트폰과 연계된 시계는 통신 및 건강 기구로서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진다. 본질, 업의 개념같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데도 반전은 일어난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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