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윈드 토커의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윈드 토커의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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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90년대 초에 미국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주에 걸쳐 있는 ‘나바호 자치국(Navajo Nation)’을 여행 중에 들렸다. ‘자치국’보다는 ‘보호구역’이라는 용어가 아직도 낯익고, 그때도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평평한 언덕 위에 사과 상자 같은 궤짝으로 좌판을 벌여 놓고 그 위에 조잡해 보이는 귀걸이나 목걸이 등의 자신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장신구들을 팔고 있었다. 팔려는 의지도 별로 보이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만 있었는데, 카메라를 꺼내 들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제지하는 손짓을 했다. 일행 중 하나가 괜한 자존심을 세운다고 비웃었다. 그들의 역사를 안다면 해서는 안 될 소리였다.

북미 대륙에 서구인들이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살아오던 여느 정착 부족들처럼 나바호도 지금의 자치국에 자리 잡을 때까지 고통의 과정을 겪으며 쫓겨 다녔다. 1860년대에 미군 정찰대가 들어와 그들의 농경지를 불태우고, 양  떼들을 빼앗고는 약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이동하도록 몰아냈다. 너무나 건조하게 이들은 이 고난에 찬 여정을 그냥 ‘The Long Walk’라고 부른다. 그렇게 쫓겨나 애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주의 구석에 있던 그들이 주목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세계 2차대전 때 미국은 나바호족의 고유 언어에 주목한다. 나바호족 이외에는 어느 사람도 감히 해독하거나 쓸 수 없고, 심지어는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든 언어였다. 바람 소리를 내며 바람에 실려 바람처럼 전달되는 소리라고 했다. 미군은 나바호족 언어 자체가 “해독 불가능한 암호”라며 나바호족들을 암호병으로 대거 기용했다. 2차대전 태평양 전역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이오지마에서 나바호 출신 암호병들은 800건의 암호를 단 한 건의 실수도 없이 보내고, 전투에도 적극 참가하면서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선봉에 섰던 미군 해병 소령이 “나바호족이 없었다면 해병은 이오지마를 결코 점령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하고 오우삼 감독이 연출한 2002년에 개봉하여 히트한 영화 <윈드 토커(Wind Talker)>가 바로 미군 해병대로 참전한 나바호족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그런데 암호병으로 참전했던 나바호족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미국 정부는 나바호 말을 금지했어요. 그런데 전쟁이 터지니 나바호 말을 쓰라고 하더군요.”

2차대전에 참전한 나바호 암호병들 (출처 INTEL.gov)
2차대전에 참전한 나바호 암호병들 (출처 INTEL.gov)

언어는 소통을 위하여 쓰이는 도구이니, 특정 언어를 금지하는 건 원래 그 언어를 쓰는 이들 간의 소통을 막는 것이다. 구성원들 사이의 대화뿐만 아니라, 앞선 시대의 문화와 전통의 흐름을 막는 의도에서 행한다. 일제가 강점기 말기에 혈안이 되어 조선어 쓰기를 막은 사실을 떠올려 보라. 그렇게 막았던 소통을 외부의 집단이 이해할 수 없다며, 다시 쓰라고 권유하며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지혜롭고 스마트한 해법이지만, 앞서 금지의 찌질함이 너무 크다.

살펴보면 다른 이들이 이해할 수 없기에 쓰이는 언어들이 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한 미국 언론사의 모스크바 특파원은 자기의 모든 전화를 소련 당국에서 실시간으로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여차하면 전화 통화를 강제로 중지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소련 정보국에서는 각 언어별로 통역자를 두어, 서방 기자들의 통화 내용을 검열자에게 거의 동시통역으로 알려주곤 했단다. 도청하는 당국자들을 골려 먹는 수단으로 그는 아버지와 통화할 때는 라틴어를 쓰곤 했단다. 라틴어 통역자까지는 통신기관에서 상시 대기시켜 놓고 있지 못했다. 라틴어 통역자를 불러올 때까지 그는 아버지와 자유롭게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유명한 변호사, 부인은 대학교 교수인 엘리트 부부가 있다. 중학생 자식들이 부모만큼, 아니 기대에 부응할 만큼의 학교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 부모는 자식들의 영어 공부를 도와주기 위하여 저녁 식탁에서는 영어로 대화를 하는 규칙을 만들어 시행한다. 당연히 그나마 뜸하던 저녁 식탁에서의 대화가 완전히 사라졌다.

어느 대학은 글로벌화를 주창하면서 학내 모든 회의를 영어로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당황하며 불만을 토로하던 교수들이 곧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회의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빨리 끝난 까닭이라고 한다. 4년 전 아들이 학부 시절 들은 영어 수업 중 하나는 교수님이 미국 유학을 어떻게 마쳤을까 싶게 제대로 내용 전달이 되지 않았단다. 교수님도 너무 답답했던지 세 번째 시간부터는 수업 시간 마지막 5분 동안 한국어로 그날의 내용을 요약하여 전달해주는데, 그 5분은 정말 천하의 명강의로 축복받은 시간이라고 했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가 소통을 막는 도구가 되곤 한다. 그런 기본 속성 때문에 효과가 더 크다고, 확실하게 금지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효과란 것이 오래 갈 수 없다. 언어를 억지로 막거나 강제하지 말라. 찌질한 반전만이 생길 뿐이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초빙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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