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큰일 나는 도시 댈러스의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큰일 나는 도시 댈러스의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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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댈러스(Dallas)라는 도시는 아직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현장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떨치지 못했다. 도시 자체가 케네디 암살을 꾸민 거대한 무대이자, 그곳의 유력자들이 공범처럼 여러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지금도 입에 오르내린다. 케네디는 굳이 댈러스를 방문할 이유가 없었으나 그리로 가서 카퍼레이드 했고,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라는 인물이 실제 케네디를 저격했는지도 명확지 않은 상태에서 체포되었고, 그마저 TV 중계가 되는 이송 중에 마피아와의 연계설이 있는 잭 루비(Jack Ruby)라는 나이트클럽 주인에게 총탄 한 방을 맞고 저세상으로 갔다. 오스왈드가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게 그 입을 영원히 침묵시켰다는 말이 나왔다.

케네디 암살 음모를 다룬 책 중 하나인 <The Texas Connection>이란 제목의 페이퍼백을 미국의 어느 공항에서 심심풀이로 사서 보았다. 케네디 암살은 존슨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텍사스인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책이었다. 당연히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 아닌 여러 사람이 총을 쐈고, 오스왈드를 죽인 잭 루비도 텍사스 범죄조직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케네디 암살에 관해서야 워낙 많은 책이 나와 있고, 주장도 다양하다. 이 책은 쉽게 쓰였고, 얇은 편이라 읽기도 좋았다. 책을 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댈러스로 출장을 갔다.

케네디 암살 직전 모습 (출처 history.com)
케네디 저격 현장 (출처&nbsp;The Sixth Floor Museum)
케네디 저격 현장 (출처 The Sixth Floor Museum 인스타그램, tourtexas.com)

케네디가 총을 맞은 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호텔에 묵게 되었다. 케네디 암살범으로 지목되었던 오스왈드가 몸을 숨기고 있다 케네디를 저격하였다는 건물이 아침 식사를 하는 곳에서 훤히 보였다. 오스왈드가 몸을 웅크리고 있던 6층을 박물관으로 꾸며 놓고 “The Sixth Floor Museum”이라고 명명했는데, 예전에 몇 번이나 들르려고 했다가 이루지 못한 방문의 꿈을 그때 이룰 수 있었다. 예전에 내가 그 박물관을 가려고 한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사실 댈러스에 있는 주재원들 대부분이 볼만한 것이 거의 없다며 말리곤 했다. 그러나 도착한 날 바로 저녁을 함께한 선배는 역사 서적을 좋아하는 분답게 기록의 복원과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을 준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다며 강력하게 추천을 해서, 호텔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에도 힘입어 드디어 그곳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선배의 말씀대로 당시의 현장을 충실하게 재현해 놓았다. 그리고 사진과 비디오 자료로 시대적 상황과 케네디라는 인물 전반, 암살 사건의 영향 등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소위 현장에서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은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영화 “J.F.K”는 차치하고라도 케네디 암살 당시의 필름과 음모론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직전에 읽은 위의 책을 포함한 여러 권의 책들을 통하여 현장의 모습은 낯익은 편이었는데, 실제 그 자리에 서서 보니까 아무리 명사수라고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움직이고 있는 표적에 그렇게 정확하게 3방-암살사건의 공식적인 종합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워렌 보고서’에는 3방을 쏘았는데 2방이 명중을 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2방도 그렇게 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정 정도의 총기 훈련을 받은 자의 상식에 따라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의 총알을 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임무였다. 댈러스하면 유명한 다른 총격도 있다.

TV 드라마 "댈러스" 포스터
TV 드라마 "댈러스"

1978년에 시작하여 1991년까지 방영된 TV 드라마인 <댈러스>의 주인공인 무지막지하면서 비열한 사업가인 제이 알 유잉(J.R. Ewing)은 1980년 에피소드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쓰러진다. 인터넷도 없던 시대였는데, 유잉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가 구름처럼 이어졌다. TV, 신문, 잡지에서 드라마를 샅샅이 되짚어보며 추리가 이어졌다. 식당에서, 술집에서, 사무실의 식수 음용대 옆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추측을 말했다. 이후 ‘누가 유잉을 쏜 거지(Who shot J.R. Ewing)?’는 배후가 드러나지 않는 사건을 두고 던지는 클리셰처럼 쓰였다. 댈러스라는 도시 이름이자 드라마 제목도 함께 언급되었다.

댈러스는 그렇게 총탄과 관련한 큰일들(big Things)이 먼저 떠오르는 도시였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댈러스 출장을 자주 다녔다. 휴대폰을 주력으로 하던 삼성 무선사업부의 판매 법인이 그곳에 있었다. 당시 첨단산업으로 떠오르던 이동통신의 수도(capital)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던 도시가 댈러스였다. 그리고 댈러스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미식축구팀이라며 “America’s Team”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댈러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가 있다. 이런 데도 케네디나 유잉의 피격만 떠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댈러스 사람들은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었다는 다음의 도시 관광 슬로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Big Things Happen Here(여기서는 큰일들이 벌어집니다).”

댈러스로서는 피하고 싶은 사실이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물고 늘어지려고 한다. 그런 비극적인 큰 사건들을 아예 대놓고 말하면 김이 빠진다. 거기에 댈러스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기대할 수 있는 정말 큰 사업들, 기회들, 흥미로운 부분들을 얘기한다. 약점을 인정하며 강점으로 변화시키는 멋진 반전이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초빙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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