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러브 스토리" 촬영지와 여고생의 도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러브 스토리" 촬영지와 여고생의 도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2.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만일 내가 <러브 스토리>의 많은 장면이 실제로는 우리가 살던 구에 위치한 포드햄 대학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 미래는 아마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 191쪽

히스패닉계로는 최초로 미국 대법관이 된 소니아 소토마요르의 자서전에 나온 고백이다. 그녀가 고교생일 때 <러브 스토리> 영화가 개봉 상영되었다.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하버드(Harvard) 대학교의 풍경이 그녀가 아이비리그의 대학교에 도전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위의 인용문처럼 상당 부분이 그녀가 살던 뉴욕시의 브롱크스 구(Borough)에 있는 포드햄(Fordham) 대학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이다. 촬영지를 잘못 알았지만, 소토마요르에게는 결국 긍정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다. 이 오해와 반전의 과정을 보면서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자기 동네에 있는 곳은 항상 보던 것이라 그런지 저평가되기 마련이다. 

외부에서 명성을 쌓고 온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는데, 맨날 보는 풍경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평가는 오죽할까. 스스로 뉴욕시 지역 전문가를 자처하기도 했지만, 사실 포드햄 대학은 이름만 들어봤지 뉴욕시 안에 있는 줄도 몰랐다. 세인트 존스(St. Jones) 대학은 가끔 농구라도 잘해서 알고 있고, 맨해튼의 페이스(Pace) 대학은 오며 가며 보기라도 했지만, 항상 피해 다니는 동네였던 브롱크스에 있는 학교였으니 몰랐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소토마요르처럼 그곳 사람들도 자기 동네 대학이라고 낮춰 보고 있지 않은가. 

2. 전설은 어떤 식으로 건 어느 곳에서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컬럼비아(Columbia) 대학교 교정에 내가 처음 갔을 때, 나를 데리고 다니며 안내를 해준 친구가 정문 왼편의 법대 건물 앞의 잔디밭을 가리키며, <러브 스토리> 영화의 눈싸움 장면이 거기서 촬영되었다고 했다. 한두 번 본 영화인데 대충 장면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이후에 사람들에게 컬럼비아 교정 가이드를 해줄 때, 영화 촬영지로 가끔 언급하기도 했다. <러브 스토리> 촬영지로서 포드햄 대학 이야기가 나와서 컬럼비아 교정 장면도 확인하려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가장 믿을만한 사이트를 찾았는데 거기에도 컬럼비아는 촬영 장소 리스트에 올라가 있지 않다. 비슷한 장면을 보고, 동네 사랑이 넘쳐나는 이들이 <러브 스토리> 촬영지라고 떠들기 시작했고, 그게 세월 타고 정설처럼 되어버린 것이지 않을까 싶다. 포드햄 대학에서 촬영했다고 하는 장면은 하나를 찾았다. 아이스하키 경기장 바깥이라고 한다. 소토마요르가 아는 것처럼 '많은 장면'은 아니었다. 

"러브 스토리"의 하키 링크 바깥 풍경. 현재는 포드햄 대학교 롬바르디 센터로 되어 있단다.

3. 거짓이라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white lie', 직역하면 ‘새하얀 거짓말’인데 '선의의 거짓말'이린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수녀들이 주인공으로 독일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는 트랩 대령을 쫓는 나치들의 자동차 타이어를 펑크 낸 후인가, 잘못된 방향을 가르쳐준 이후인가 '죄를 저질렀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거짓말을 했든, 나쁜 일을 했든 하여간 트랩 대령 일가를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행위였다. 하버드 대학이라고 믿은 장면들이 진위 여부를 떠나서 소토마요르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이십여 년 전에 잡지 <신동아> 논픽션 공모 부문의 입선작 하나도 기억난다. 뇌물을 주지 않았다고 자기네 부모가 수확한 쌀에 형편없는 등급을 내린 평가관을 돌로 내리치고 고향을 떠나 유랑하다가 십몇 년 만에 도망자 생활에 지쳐 고향집으로 돌아온 사람의 기록이었다. 그는 평가관을 죽였다고 생각했으나, 그리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뇌물 먹은 것도 있고 해서인지 쉬쉬 거리며 떠나버렸다. 본인만 스스로를 살인자로 규정하며 신산한 하루하루를 무려 이십 년에 걸쳐 보냈던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같은 현상을 두고도 사람의 삶은 엇갈리고, 그에 따른 반전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초빙교수, 대학내일 사범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