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미친 자가 천재가 되는 반전의 2022년을 기대하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미친 자가 천재가 되는 반전의 2022년을 기대하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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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지난주 칼럼에 나왔던 버니 샌더스가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썼던 포스터의 ‘NOT ME, US’라는 문구를 보고 한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US’라고 대문자로 쓴 건 ‘우리’와 ‘미국’을 다 노려서 중의적으로 쓴 것이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을 수 있다. 거기에 대고 버니 샌더스 측에서 ‘중의적이다’, ‘아니다’ 식의 대답하는 순간에 포스터에 나온 문구의 말맛이 사라진다. 중의적인지 묻는 질문이 나왔다는 자체로 그 포스터는 주의를 끌고 흥미를 유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람들이 헷갈릴 수 있으니 문제가 있다고, 전혀 반대로 평가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를 강조하듯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라고 말한다. 상상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해석이 들어가야 하는데, 혹시나 의도와는 다른 쪽으로 풀이가 될까 두려워한다. 그 바탕에는 메시지를 받는 이들이 자신의 통제 범위를 넘어선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런 두려움에서 세상을 뒤엎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 애플(Apple)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캠페인에서 얘기한 ‘미친 자(crazy ones), 부적응자(misfits), 반항아(rebels), 문제아(trouble makers), 네모난 구멍의 둥근 못(The round pegs in the square holes)’같은 이들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그런 이들, 그런 광고들을 기대할 수 없다. 아주 작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표현으로부터 그런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은 열릴 수 있다.

‘여름이었다’. 2019년에 한 네티즌이 학교 시 쓰기 숙제로 아무 문장에나 ‘여름이었다’를 더해서 제출했다. 그게 퍼지면서 밈이 되어 때를 가리지 않고 아련한 추억을 클리쉐와 같은 뻔한 장면들과 함께 떠오르게 하는 표현이 되었다. 이 ‘여름이었다’가 유행이라는 말을 듣고, 일본의 바닷가 도시인 카마쿠라를 무대로 펼쳐지는 장편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보던 바다가 만화에 나온 것인지, 실제로 내가 십 년 전에 가서 본 것인지 섞여졌다. 세 자매의 집과 그들의 일상과 사랑의 삽화들 속으로 내가 한동안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잠시 멈춰서 하얀 와이셔츠의 소매 부분을 걷으며, 숨을 고르고 이마의 땀을 닦고 싶었다. 바닷가 자갈밭 길을 따라 고물 자전거를 끌고 편지를 배달해도 좋겠다. 편지를 받는 이가 시인이라면! 아니 거기서는 편지를 배달하는 이나 받는 이나 모두가 시인이 되겠다. 여름이었다.

여름은 겨울이 있기에 더욱 빛이 나고 아름답다. 겨울을 사용한 문장도 ‘여름이었다’의 대구(對句)처럼 다시 유행을 탔다. 미국의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나온 ‘Winter is coming(윈터 이즈 커밍: 겨울이 오고 있다)’이라는 표현이다. 무지하게 춥고 그래서 고통스러울 것이란 암시 외에 실제 어떤 겨울일지 아무도 모른다. 겨울을 막고자 장벽을 건설했으나 자신할 수 없다.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는 것 같지만, ‘윈터 이즈 커밍’이란 한 마디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드라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와 서스펜스를 조성하여, 거의 십 년을 두고 시청자들을 <왕좌의 세계>에 잡아 놓았다. 드라마는 완결되었지만, 그것이 해피엔딩인지 정말 끝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계속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찬 바람과 함께 문 앞에 얼쩡거리고 있는 것 같다. 윈터 이즈 커밍.

여름과 겨울의 대비 이상으로 두 문장은 동양과 서양의 근본적인 차이를 담고 있는 듯도 하다. 과거의 따뜻함에서 오늘을 사는 힘을 얻는 동양에 비하여, 미래의 공포를 조성하며 도전 의식을 일깨우는 서구라 할까. 그러나 이 역시 과거 회귀, 미래지향, 정감과 냉담 등의 단어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들어간 ‘여름이었다’, ‘윈터 이즈 컴잉’ 다음에 오는 구두점으로부터 가능성의 세계는 새롭게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을 열 때 우리는 비로소 온갖 미친 자들이 천재로 솟아나는 반전을 보게 될 것이다.

While some may see them as the crazy ones, we see genius. (다른 이들이 미친 자라고 하는 이들에게서 우리는 천재를 봅니다.)

그런 여러분의 2022년을 기대한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박재항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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