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게으름으로 성공하자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게으름으로 성공하자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11.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2004년 여름에 스위스 국경 가까운 이태리 휴양지에서 ‘전국 게으름뱅이 대회(National Convention of the Idle)’라는 행사가 열렸다. 사회에서의 성공을 위하여 바쁘게 순간순간을 사는 현대인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목적으로 이태리의 유명 코미디언이 주도했다고 한다. 한국의 ‘멍 때리기 대회’와 비슷한 분위기였을 것 같다. 영어로 옮겨진 그 대회에서 내건 몇몇 조항들을 봤다.

Let others always make the first move (항상 다른 이들이 먼저 행동하게 하라).

먼저 나서지 말란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22 Immutable Laws of Marketing)’의 첫 번째가 ‘선도자의 법칙(The Law of Leadership)’을 뒤집어버렸다. 항상 최초로 할 것만 찾는 삶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그런데 이들은 게으름을 예찬하며 그 무리들을 한곳에 모으는 최초의 행사를 벌였다.

Remember that exercise is for other people (실행은 남의 몫이란 걸 기억하라).

이 역시 자신이 나서서 끝까지 책임지려는 짓은 생각하지도 말라는 얘기다. 광고 부문에서라면 아이디어 내주는 정도에서 만족하고 다른 이들이 실행은 하게 놓아두라는 걸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보면서 전체를 이끌어가는 데는 이런 종류의 게으름이 필요하기도 하다. 기업인 출신으로 대통령 선거에도 나섰던 이가 ‘한국인은 세 명이 할 일을 둘이 하게 만들어서, 둘은 바빠서 힘들고 한 명은 일이 없어서 힘들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Never, ever volunteering for anything (어떤 일이건 절대 자원해서 나서지 말라).

‘내일 해도 되는 일을 절대 오늘 하지 말라’고 하던 이전 상사의 말과 연관이 되는 자세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나서지 말라는 공무원에 잘 비유되는 태도 같기도 하다.

‘전국 게으름뱅이 대회’가 그 이후로 계속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태리에서 꽤 화제가 되기는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후에 다음과 같은 ‘게으름뱅이 십계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괄호 안 번역은 필자가 알아서 했다.

1. You are born tired, so you must live to rest. (태어나느라 힘들었으니, 살면서는 쉬도록 해라.)

2. Love your bed as you love yourself. (침대를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3. If you find someone resting, help him. (휴식을 취하는 사람을 보거든 도와주라.)

4. Rest in the daytime so that you can sleep at night. (낮에는 휴식을 취해, 밤에 편안히 자도록 하라.)

5. Work is sacred; don’t touch it. (노동은 신성한 것이니, 가까이 하지 마라.)

6. There is no need to do today what you can do tomorrow. (내일 해도 되는 일을 오늘 하지 말라.)

7. Work as little as you can; let someone else do your chores. (일은 될 수 있는 한 피해서 다른 이가 네 일을 하도록 해라.)

8. Calm down! No one has ever died because of resting too much. (흥분하지 마라. 너무 쉬어서 죽었다는 사람은 없다.)

9. When you feel the desire to work, lie down and wait for it to pass. (일을 하고픈 마음이 불쑥 들면, 조용히 누워서 그 욕망이 사라지길 기다려라.)

10. If working truly makes you healthy, let the sick people do it. (일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면, 몸이 안 좋은 사람이 하게끔 해라.)

이전 상사의 말씀과 같은 것이 들어 있어 반가웠다. 위의 ‘게으름뱅이를 위한 십계명’은 나라마다 조금씩 버전을 달리해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게으름뱅이 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는지 이태리 사람들은 게으름의 유구한 전통이 있다며 다음과 같은 속담들을 자랑하기도 했다.

"Chi ha fretta vada piano." Make haste slowly. (천천히 서둘러라.)

"Chi non fa, non falla." Those who do nothing, make no mistakes. (아무 일도 안하면 실수할 건덕지도 없다.)

"Chi va piano va sano e va lontano." He who goes slowly goes far and surely. (천천히 가야 더 멀리 확실하게 간다.)

"Il tempo viene per chi sa aspettare." All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

"La gatta frettolosa fece i gattini ciechi." The hasty cat gave birth to blind kittens. Haste makes waste. (서두른 고양이는 눈 먼 새끼를 낳기 마련이다. 급하게 굴면 망친다.)

"Meglio tardi, che mai." Better late than never. (늦게 하는 게 안하는 것보다 낫다.)

"Non destare il cane che dorme." Let sleeping dogs lie. (조는 개는 눕혀라.)

"Quando la pera è matura, casca da sè." All things happen in their own good time. (언젠가 맞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Roma non fu fatta in un giorno." Rome wasn't built in a day.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태리 답지 아니한가. 근래 이태리가 엉망이라고 꾸짖는 소리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이태리의 음악과 요리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곧 그들이 문화강국이라는 걸 부인하지 못한다. 너무 힘든 광고인들도 이런 생활 반전의 여유를 가끔은 즐겼으면 좋겠다. 그게 길게 보면 각자의 경쟁력을 높이고 길게 가져가는 길이지 않을까.

 


박재항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대학내일 사범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