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같은 말과 행동의 다른 결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같은 말과 행동의 다른 결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11.15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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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올해 여름에 돌아가신 나의 장인어른은 30년 이상 열성적으로 골프를 즐기셨다. 처음에야 비즈니스를 위한 목적이 더 컸던 듯한데, 나중에는 운동 그 자체의 재미에 더 큰 비중을 두셨다. 은퇴하시고 70세가 넘어서는 주로 고교 동창분들과 어울려 정기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치셨다. 그런데 70대 이후로는 4명 한 조 모으기도 힘들 때가 많다고 하셨다. 자기 나이와 같은 타수를 기록하는 ‘에이지 히터 age hitter’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점수는 어떠시냐 여쭈었더니, 껄껄 웃으시면 대답해 주셨다.

"캐디가 서너 홀 치다가 '그냥 치셔요'라고 하고는 기록도 안 해".

물론 소소한 내기를 걸어 목숨이 걸린 듯이 승부를 겨루지만, 점수를 기록하지 않으니 치는 데 부담이 덜어지고, 그렇게 말하는 캐디에게도 꼭 고맙다고 하셨단다. 그런데 몇몇 친구들은 그런 캐디들에게 점수를 기록하지 않는다고 ‘노인이라 무시한다’라고 역정을 내는 분들이 계셨단다. 같은 현상이라도 받아들이는 방식은 참으로 다를 수 있다. 비슷한 경우를 자주 본다.

전해 내려오는 웃기는 얘기를 모은 책에서 본 꼭지다. 옆집 애랑 항상 비교하면서 자기 아들을 항상 혼내는 아버지가 있었다. 혼나기만 하던 아들이 자기도 효자가 되리라고 마음을 먹고 옆집 애를 따라 하려고 유심히 관찰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난 옆집 애는 그의 아버지가 벗어놓은 옷을 입고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 자기 옷을 찾던 옆집 아버지가 자기 옷을 입고 자고 있던 애를 보고는 말했다. “아비에게 따뜻한 옷을 주려고, 몸으로 덥혀 놓았구나”. 그러며 아들을 깨워 칭찬하고는 옷을 챙겨 입더란다. 다음 날 옆집 애와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자기 아버지의 옷을 입고 잠들었는데, 우악스러운 주먹질과 꾸지람에 잠이 깼다. “이놈의 자식이 미쳤나. 아비 옷을 함부로 입고 자다니!” 아침부터 혼쭐이 난 아들이 방에서 쫓겨나오며 구시렁댔다. “아비가 아비 같아야 효도를 하지.”

‘군주는 배, 백성은 물’이란 ‘군주민수(君舟民水)’란 말이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한자성어’에 뽑힌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고 말 잘 듣는 평온한 물과 같은 백성들 위를 유유히 헤쳐가는 배를 떠올릴 수도 있는데, ‘물이 배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라는 뜻의 ‘수즉재주 수즉복주(水則載舟 水則覆舟)가 함께 따라붙어 쓰이는 상황이 훨씬 많다. ‘군주민수’가 뽑혔을 때가 2016년 12월이었다. 한창 당시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시위가 전국을 뒤덮고 있던 시점이었다. 평화롭고 정치 지도자의 지지도가 높을 때와 반대 시위의 열기가 드높을 때의 해석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맹숭맹숭하고 공자님 말씀 같거나 지식을 뽐내며 현학적으로 치달았던 대학교수들의 ‘올해의 한자성어’가 화제가 되면서 회자되었던 드문 사례였다. 같은 말과 행동이라도 다르게 해석되고 의도하지 않은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 교훈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변치 않는 것은 없으니, 자기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이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진보적 좌파 성향이란 평을 들었는데, 전후에는 보수적이라며 학생운동권과 사회주의 정당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았던 일본 도쿄대 총장까지 지냈던 하야시 겐타로(林健太郎, 1913~2004)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은퇴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결코 왔다 갔다 하지 않았다. 큰길의 가운데만을 걸었다. 길이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세상과 사람들의 기준은 시류에 맞춰 변한다. 그러 변하는 세태에 맞춰서 바쁘게 쫓다 보면, 자기까지 없어져 버린다. 기업의 경우 눈앞의 매출에만 연연하면 자기의 브랜드는 영영 갖출 수 없다.

둘째, 세상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시장세분화(segmentation)와 목표 고객 설정(targeting)을 하는 까닭이 있다. 꼭 비용의 효율성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 상황과 공간이라는 변수가 들어간다. 어느 상황에서는 맞는 전략이지만 상황이 바뀌면 폐기처분해야 할 때도 많다. 페넌트 레이스를 할 때와 코리안 시리즈에서의 경기 운영 방식은 다르다. 6개월 이상을 두고 펼쳐지는 정규시즌에서는 4위를 했지만, 단기전에서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구단을 보고 있지 않은가.

셋째는, 램프의 요정인 지니나 애플의 아이맥 초기 광고에 나온 식으로 얘기하면 ‘그런 건 없다(No step three). (이전 칼럼 참조) 알아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가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 싫어했던 사람도 마음을 아무 이유 없이 바꿀 수도 있다. 한국에서 하드록을 즐긴 1세대를 자처했던 어느 여성이 50대가 넘어 노래방에서 나훈아 노래만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문화평론가로 음악사 얘기를 할 때 ‘부기우기(Boogie-woogie)’를 언급할 때면 꼭 ‘주산하는 부기가 아니야’라는 농담을 수십 년 전부터 공식처럼 붙이는 선배가 있었다. 예전에 짜증났었는데, 최근에는 진심으로 그 농담이 재미있어서 큰소리로 웃었다. 이런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억지로 만드는 반전보다 예기치 않게 생기는 반전의 효과가 더욱 크고 재미있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그런 반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도 한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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