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한국에서 더 뚜렷한 오랑캐의 존재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한국에서 더 뚜렷한 오랑캐의 존재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11.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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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승리의 노래’라는 제목의 이 노래를 1970년대 초등학생 시절에 가족 행사에서 불렀었다. 학교에서 가을 이맘때면 열리던 운동회에서 우리 학년이 행진 대열로 입장하며 부르던 노래였다. 여자애들은 이 노래를 하면서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때의 ‘오랑캐’는 중공군, 곧 중국공산당의 군대로 한국전 때 전세를 역전시키며 치고 올라가서 거의 손에 잡힌 듯했던 북진통일의 꿈을 앗아간 무리를 가리켰다. 늴리리 피리 소리와 함께 제대로 무장도 하지 않은 채, 파도와 같이 무리 지어 공격한다는 소위 인해전술로 머릿수만 앞세우는 규율 없는 오합지졸이라는 오랑캐 중공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다는 ‘항미원조(抗美援朝)’의 기치를 내세운 의용군으로 자신을 브랜딩 한 이들은 일본과의 중일전쟁과 중국 국민당과의 국공내전(國共內戰)을 거치면서 단련된 노련한 전사들이 주축이었다. 이들에게 신생 대한민국의 육군은 대부분의 경우 일방적으로 몰아쳐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그야말로 ‘밥’이었다. 대한민국 육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승리한 전투는 몇 손가락에 꼽힌다. 그 가운데 중공군을 대파하며 거의 사단 병력 이상을 호수로 몰아 수장시켰다는 승전이 있었다. 기쁨에 찬 당시 대통령이 호수 이름을 바꾸며 자신의 글씨로 표지석을 내렸다. 현재 화천군에 위치하고 있는 ‘파로호(破虜湖)가 그 주인공이다.

‘虜’는 보통 ‘포로’라는 단어에서 쓰이는 것처럼 ‘사로잡다’의 뜻인데, 중국 명나라 때 나중에 청(淸)나라를 일구는 만주족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글자로도 썼듯, 중원 바깥의 ‘오랑캐’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우리도 그걸 가지고 와서 ‘파로호’라고 명명했는데, 오랑캐를 뜻하는 글자로 더욱 많이 쓰였던 건 ‘호(胡)’다. ‘호’가 들어간 단어들은 한국어에도 심심치 않게 남아 있다. 중국풍 옷을 ‘호복’이라 하고, 후추도 원래 중국 산초라는 뜻의 ‘호초(胡椒)’가 변한 것이라 한다. 호떡의 ‘호’도 그러하다. 곧 ‘호’는 중국 밖의 오랑캐가 아니라 중국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의미가 확산되었다. 순수하게 오랑캐라는 뜻으로 쓰인 사례로는 다섯 글자 구절 둘이 내게는 가장 먼저 생각난다. 

파로호 비 (출처 화천군청 홈페이지)
파로호 비 (출처 화천군청 홈페이지)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나지 않는구나)'

중국 한나라 때 북쪽 변방에서 흉노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과의 화친을 위하여 한나라 궁녀를 보내기로 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궁정 화공이 그린 초상화들을 보고 가장 용모가 떨어진다고 하는 궁녀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모든 궁녀가 황제에게 간택되기 위하여, 자신을 아름답게 그려달라고 화공에게 뇌물을 주었다. 뇌물을 주지 않은 단 한 명의 궁녀를 화공은 아주 추하게 그렸다. 그 흉물스럽게 그려진 궁녀가 흉노에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니, 바로 왕소군(王昭君)이었다.

흉노로 가려고 나타난 왕소군을 보니 궁녀 중 최고의 미인이라 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한나라 황제가 놀라서 자초지종 경위를 알아보고는, 뇌물을 수수하며 멋대로 초상화를 그렸다는 화공을 처형했다는 고사가 있다. 이 사건을 그린 중국 TV의 어느 사극에서는 흉하게 그려진 왕소군의 초상화를 얼굴에 점 하나 찍은 것으로 대신했다. 점 하나 얼굴에 찍고 나타나,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는 데 성공한 한국의 이전 TV 드라마 하나를 연상케 했다. 척박한 흉노 땅에 간 왕소군에 빙의하여 당나라 시인이 읊은 대목의 하나가 바로 위의 구절이다. 바로 뒤에 따라오는 구절도 유명하다. 바로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라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호지무화초’ 구절을 가지고 한국에선 구글, 중국에서는 바이두(Baidu)로 이미지 검색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왕소군의 그림이나 왕소군을 언급한 이 시를 인용한 기사와 필자들이 나왔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놀랍게도 ‘꽃이 피지 않는 풀’이란 ‘무화초’의 문자 그대로의 뜻에 충실한 사진들만이 떴다. 전하는 얘기로 왕소군은 중국 중원 한나라의 문물을 흉노에게 전하며, 그들을 한나라 입장으로 보면 교화를 시켰다고 한다. 왕소군에 힘입어 중국에서는 더 ‘오랑캐 땅’의 ‘호지’가 아니게 반전이 일어났는데, 한국에서만 ‘오랑캐 땅’을 ‘호지’라 칭하며 왕소군이 끌려가던 시대를 계속 부여잡고 구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타자와의 구분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경향이 드러난 것도 같아서 살짝 씁쓰레하다.

조선 후기 화가 강희언이 그린 "소한출새( 昭君出塞)"
조선 후기 화가 강희언이 그린 "소한출새( 昭君出塞)"

 


박재항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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