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요기 베라의 반전 화법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요기 베라의 반전 화법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10.2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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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 베라 (ⓒAcademy of Achievemenet)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이맘때면 뜨거워지는 프로야구의 열기에 편승하여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선수 하나를 소환했다. 1946년부터 1963년까지, 뉴욕 양키즈(New York Yankees)가 1949년부터의 5연패를 포함하여 월드시리즈를 여덟 번이나 장악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때에 주전 포수로 활약했던 요기 베라(Yogi Berra)라는 걸출한 선수이다.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플레이 자체는 아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팀 플레이어 형의 포수였고, 필요할 때면 꼭 한 방씩 때려 주는 장타력도 있고, 그러면서도 거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지 않는 끈질기며 섬세한 면도 있던 그 시대의 양키즈에 맞는 전형적인 짭짤하기 그지없는 선수였다.

이 요기 베라는 독특한 화법(話法)으로도 유명하다. 문법이나 단어들의 쓰임새로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래서 차라리 의미를 확실하고 강하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그런 방식의 화법을 일컫는 요기즘(Yogi-ism)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요기즘은 지나치게 수리적 합리주의를 추구했던 기성세대에 맞서 감성을 전면으로 끌고 나온 60년대 일군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존의 처세나 가치관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쿨(Cool) 한 철학적 화법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후로도 지금까지 심심치 않게, 광고 회사의 발표 자리에서, 정치인들의 연설에서 요기즘을 인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즐겨 인용하는 요기즘이 꽤 있다. 요기즘의 대표적인 것들을 몇 개 소개하며, 광고와 결부시킨 해석을 덧붙인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보통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번역을 한다. 요기 베라가 1973년 뉴욕 메츠(New York Mets) 감독을 맡고 있을 때, 시즌 중반에 '요기 베라의 시즌은 끝났다'라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반박하며, 선수들을 모아 놓고 한 얘기라고 한다.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두고 보라" 혹은 "열심히 하자"라는 식의 의미이다. 양키즈 본바닥인 브롱크스 출신의 제일기획 미주법인에서 함께 근무했던 밥 슐만(Bob Schulman)은 요기 베라가 "It ain't over until the fat lady sings"라는 말도 했다는데, 그것은 NBA 모 팀의 코치가 한 얘기였다. 하여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 한동안 아무런 소비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뜨는 제품들이 많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I didn't say everything I said."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신문기자와의 인터뷰 기사가 물의를 일으키자 자신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거의 같은 의미의 말이다. 단지 요기식으로 표현이 되어서 그렇지. 듣는 사람의 각도에서 보면, 내가 의도한 대로 사람들이 나의 말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광고에서 의도했던 메시지를 사람들이 아주 다르게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We have a good time together, even when we're not together."

서로 일편단심으로 해로하고 있는 부인인 카르멘 베라(Carmen Berra)와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며 한 이야기이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요기 베라의 애틋한 사랑이 오롯이 담겨 느껴진다. 아마 이 말은 누가 했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소지가 많다. 결혼해도 개의치 않고 다른 연인과 놀아나는 이들이 있다. 그런 부부가 이런 말을 했다면 서로 같이 있으면 즐겁게 놀지만, 제각기도 서로의 존재를 개념치않고 잘 논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같은 광고 메시지나 작품이라도 누구에 의하여, 어느 채널에서, 어떤 상황에 전달되는가에 따라서 소비자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Always go to other's funerals, otherwise they won't go to yours."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똑같이 해라'라는 뜻인데, 그 예가 장례식이 되면서 말이 묘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다른 친구들 광고를 좀 보라는 의도로 이 말을 가끔 사용한다.

"Slump? I ain't in no slump...I just ain't hitting."

'난 슬럼프에 빠진 게 아니에요. 타격이 안 되고 있을 뿐이지'라는 강변으로도 들리는데, 위의 얘기에 대한 그의 해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슬럼프에 빠질 수는 있다. 그 이유들을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근본까지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작은 것들을 변화시켜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근본을 지키면서, 약간의 변화를 주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브랜드를, 광고를 하는 기본적인 접근 방법이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you might not get there."

요기즘 중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광고의 목적,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모르면 그곳에 도달할 수도 없을뿐더러, 도달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요기즘을 놓고,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요기 베라가 그런 말을 하게 된 상황과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그런 비난을 했다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요기즘에 대해서 그런 비난을 늘어놓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기즘을 물고 늘어진 데 비해서, 요기 베라의 경우 일부러 그런 말들을 교묘하게 만들어 내려 했던 것도 아니고, 위에서 간단하게 설명했듯이 그 말에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결국, 요기즘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정치인들의 수사법의 하나로 몇십 년을 두고 인기를 끌고 있다. 틀 속에 자신을 얽어매지 말고, 담길 의미를 생각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반전을 만들고, 진정 생명력 있는 틀을 만드는 길이다.

사족으로 요기 베라보다 한 세대 이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St. Louis Cardinals)에 정말 혜성처럼 나타나 만화와 같은 활약을 보여 주었던 디지 딘(Dizzy Dean)이란 투수가 있었다. 그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해설자로 변신하였는데,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던지라, 문법에 맞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먼저 영문학자들의 비난 대상이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요기 베라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덜 했을 수도 있다. 또 하나 결정적인 차이는 디지 딘은 선수 시절부터 큰 소리 잘 치고, 좋게 얘기해서 스타성이 아주 강한 스타일이었는데 비해서, 요기 베라는 그야말로 성실한 생활인 스타일의 스타였다. 디지 딘이 재미를 위해서 억지로 만들어 내는 말이 많았던 데 비해서, 요기 베라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심을 알아 달라고 사람들에게 응대하면서 우러나온 말들이었다. 당연히 그 반전의 품격과 그에서 퍼지는 울림에서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박재항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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