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겁쟁이지만 공포영화가 좋은 이들을 위한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겁쟁이지만 공포영화가 좋은 이들을 위한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10.0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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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랑종' 중에서 (출처 위키트리)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여자친구와 어떻게든 스킨십을 해보려던 젊은 남성들에게 공포영화가 권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화면에서 불쑥 터지는 무서운 장면에 놀라서 옆자리의 남자친구에게 자연스럽게 안긴다는 것이었다. 여름이면 ‘납량특집’이란 광고문구를 달고 공포영화들이 몇 안 되는 영화관에 꼬고 걸리곤 했다. 여름이니 문자 그대로 스킨십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성공한 친구들은 드물었다. 대개 여성들이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씁쓰레하게 말했다. 개중에는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갔던 남자가 영화를 보고 더 무서워해서 자신의 공포를 추스르는 데 바빠서 영화 내내 눈을 두 손으로 가리고는, 영화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친구들도 소수 있었다.

여자친구를 두고 그런 시도를 해보지는 않았다. 나 자신이 먼저 공포영화를 싫어하고 무서워는 부류에 속했다. 겁쟁이라고 불러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런 겁쟁이라고 해도, 가끔 그런 공포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워낙 인기를 끈 공포영화는 보고 싶은데 여러 여건이 뒷덜미를 잡아당긴다. 마케팅 용어로 하면 ‘구매장애요소’가 되겠다. 그런 나 같은 사람이 공포영화를 보지 않게 만드는 장애요소를 치우는 시도가 있었다.

영화관은 원래 어두운 상태이다. 광고나 예고편이 나올 때는 관객들이 들어오는 걸 돕기 위해서도 약간의 빛이 있지만, 영화를 시작할 때는 그나마 있던 불도 꺼버린다. 그렇게 어둡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스킨십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영화관을 찾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빛을 기본으로 한 영화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집중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이다. 공포영화에서의 소등은 공포감을 더해주는 장치가 된다. 그런데 환하게 불을 밝힌 상태에서 공포영화를 상영하는 반전을 시도했다.

영화 <곡성>으로 으스스한 분위기의 공포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감독이 태국 영화인들과 공동으로 <랑종>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감독의 말로는 <랑종>에 비하면 <곡성>은 코미디 영화라며 최고의 공포를 선사하겠다고 했다. 이미 극도의 공포를 선사한 영화감독의 호언에 영화 커뮤니티에서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볼지 말지 고민된다’라는 말이 나왔다. 고민을 완화해주는 대책이 나왔는데, 그 대표가 바로 불을 켜고 보는 ‘겁쟁이들을 위한 상영회’였다.

공포를 배가시키는 효과를 내는 어둠을 배제해버리는 반전을 일으켰는데, 행사의 이름에도 무서운 것이라면 손사래를 치며 피하는 ‘겁쟁이’를 아예 전면에 내세웠다. 공포영화를 즐기지 않는 이들까지 고객층을 넓히려는 의도가 보인다. 살짝 자존심을 자극하는 측면도 있다. ‘이렇게 환한 상태에서도 못 본단 말이야’라고 놀리는 것 같이 들리기도 한다. 이 상영회 후에 공포를 누그러뜨리는 아이디어들이 나왔단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사운드이다. 영화 속에서 사람을 해치는 무언가가 불쑥 나타나거나 누군가의 비명 소리 같은 게 놀라게 한다. 다른 관객들의 비명도 한몫한다. 그런 소리를 차단할 귀마개를 제공하기도 했다는데, 효과는 미지수이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 나오기 전에 사전 카운트다운을 하는, ‘공포 장면 예고’도 아이디어의 하나로 제시되었다고 한다.

스킨십을 위한 목적 이외에 공포영화를 즐긴다는 것에는 대체로 모순되는 속성이 있다. 무서워하면서 왜 꼭 가려고 하는 것인가. 하긴 공포영화의 대표적인 클리셰를 보면 거기도 이해 못 할 구석이 있다. 몇몇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매해 계속 터진 외딴 산골 별장으로 왜 계속 찾아가며, ‘죽음 각’이란 말이 나올 정도인데, 꼭 거기서도 까불며 깝죽거리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눈 가리고 귀를 막으며 영화를 거부하면서도 그렇게 공포영화를 찾아보며 여름이면 납량영화의 공식을 만든 자체가 반전 아닌가.

뒷얘기로 개봉 첫 주에 55만 관객을 동원했던 <랑종>은 이후 열기가 바로 사그라지면 81만 기록으로 끝났다. ‘코미디’라고 폄하 비슷하게 했던 680만의 <곡성>에 감독이 미안하든지 쑥스러웠을 것 같다. 여기에서 교훈이 있다. 지나간 일이라고 함부로 평가할 일 아니다. 그리고 작품이 좋아야 한다. 프로모션 아이디어가 아무리 뛰어나도 흥행몰이를 하는 데는 한시적이다. 품질이 따르지 않는 상품을 광고나 행사로 파는 데 한계가 있듯이 말이다. 만들어내는 반전의 효과가 오래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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