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상류로 가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상류로 가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8.2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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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한국전 때의 일이다. 대한민국 육군의 어느 사단에서 전세가 좋지 않은데, 일본군 하급 장교 출신인 사단장은 돌격대식 진격만을 부르짖었다. 압도적인 적의 포화와 병력에 의하여 무참하게 살육 당하고 후퇴할 것이 뻔했다. 참모는 공격 계획과 함께 후퇴 계획을 짰다. 적에게 격퇴당하고 몰렸을 때 어떤 식으로 그래도 병력과 화기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빠져나올 것인지 계획을 짠 것이다. 그 참모는 사단장에게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거의 즉결 처형을 당할 뻔했다. 다른 참모들이 빌고 빌어서 보직 해임이 되어 작전에서 배제되었고, 그가 세운 후퇴 계획은 백지가 되었다. 결국 무모한 공격을 했던 사단 전체가 괴멸 지경에 이르렀다. 후퇴 계획이란 게 없었으니, 무분별하게 분산하여 후퇴를 했다. 사단장은 참모들에게 소리를 쳤다. “후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뭣들 했냐. 그러고도 너희가 참모냐!

비슷한 상황을 들었다. 어느 세도가의 집안에서 후계 자리를 놓고 아들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한 아들의 참모가 그가 주군으로 모시는 아들이 권력 다툼에서 패하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계획을 짜보라고 아래 사람에게 시켰다. 아래 사람은 그 지시를 받고는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 그 참모의 라이벌인 다른 참모에게 가서 자기 상사가 지시한 걸 일러바쳤다. 자신의 상사인 그 참모가, 주군이 비참하게 되는 것을 상정하는 불충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한다고 자신이 고자질하는 이유를 댔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 주군은 그 치열했던 권력 다툼에서 이겼다. 그런데 논공행상을 하는 기쁜 자리에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려고 했던 그 사람은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공격에 힘을 보태야 할 때 달아날 궁리만 했다는 손가락질 속에 마치 축제의 제단에 올려진 제물의 꼴이 되었다.

중국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에 곡돌사신(曲突徙薪)이란 말이 있다. ‘굴뚝을 굽히고 땔감을 옮긴다’라는 뜻이다. 어느 집 앞을 지나던 사람이 집주인을 찾아와서 말했다.

"댁의 굴뚝이 너무 곧게 뻗었군요. 게다가 곁에 땔감까지 쌓아두어 화재가 염려됩니다. 굴뚝을 지금보다 조금 굽히시고, 땔감은 떨어진 곳으로 치우십시오."

주인은 정말 아닌 굴뚝에 뭔 일이냐는 식으로 네 걱정이나 잘하라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정말 불이 났다. 다행히 이웃 사람들이 달려와서 불을 껐다. 주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를 잡아 이웃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불 끄다 다친 사람을 가장 윗자리로 모셨다. 막상 앞서 굴뚝을 굽히고 땔감을 치우라고 충고한 사람은 잔치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잔치에 참가했던 사람 하나가 주인에게 우습다는 듯 말했다.

"앞서 그 사람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잔치를 한다고 소를 잡고, 돈을 쓸 필요도 없었겠지요. 소란을 피우지도, 걱정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제 사후에 공을 논하면서 바른말로 충고해 준 사람은 아무 보람도 없고, 불 끄다가 이마를 다친 사람만 상객(上客) 대접을 받습니다그려."

출처 www.artsy.net

광고회사 출신인 한 친구의 이력서를 보는데, ‘OO 광고주를 잘 관리하여, 무경합으로 계약 연장에 기여’라는 구절이 있었다. 반가웠다. 예전에 계약만료 기간이 다가오는 광고주들에게 일부러 브랜드 프로젝트를 만들어 제안을 하곤 했다. 프로젝트를 바로 하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했으면 좋겠다며 계약을 연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제안을 하는 자체로 정성이 갸륵하다고 느끼거나, 다른 광고회사에게 없는 역량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광고주가 꽤 있었다. 어떤 때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강의를 나가곤 했다.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효과를 노린 행동이었다. 실제 그런 행동이 경합을 하도록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계약을 연장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그런 경우가 새로 따오는 것만큼 평가를 받지 못했다. 기존 광고주가 경합을 붙여서, 거기에 이겨서 수성을 하는 경우보다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경합을 하면서 쓰게 되는 인력과 시간과 경비를 거의 쓰지 않고 거의 같은 결과를 조용히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빛나지도 않고, 인정도 받지 못하다 보니 ‘어차피 하지도 않을 프로젝트 제안서를 왜 써야 하냐?’는 식의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토로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얘기해 주며 달래곤 했다. ‘아무리 그런 효과가 있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잖아요’하고 반박을 하면 참으로 대답이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구절처럼 되면서 궁색해지곤 했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거나, 그 문제로 인한 피해를 체계적으로 줄이는 것’을 ‘업스트림(upstream) 활동’이라고 명명하며, 같은 제목의 책을 낸 친구가 있다. 역병들이 계속 나오고, 백신이 나오고 어떻게 잡았다 싶은데, 변이 종들이 계속 나온다. 이러면 정말 업스트림, 곧 상류로 올라가 근본을 치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백신의 효과와 수량이니 거리 두기 단계와 지원금 지급도 필요하지만 누군가는 문제의 근원으로 가거나 향후에 벌어질 다양한 경우를 예상하고 먼저 대비책을 세우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답답한 생각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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