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한글 사용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한글 사용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1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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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2021년 1월 까만 바탕에 큼지막한 크기의 고딕체로 하얀색 폰트의 간단한 문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인권을 강조하듯 빨간 줄이 밑에 그어져 있었다.

“의료는 인권입니다”

코비드 시국에서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구이다. 아래 영어로 페이스북 어카운트의 주인 이름인 듯한 게 적혀 있다. ‘Bernie’. 이렇게 성도 아닌 이름만 적어도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인물이라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바로 떠오르는데, 과연 그가 이런 한글로 된 포스팅을 했단 말인가? 바로 그렇다. 그 버니 샌더스였다. 왜 그는 굳이 한글을 썼을까?

잘 알려진 것처럼 버니 샌더스는 모든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보편적 의료복지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 의료가 현실에서 실행되고 있는 국가로 그는 한국을 예로 들곤 했다. 이 한글로 된 페북 포스팅을 하면서 그가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알만한 이들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의미를 전달하며 효과를 거두었다.

먼저 한글을 아는 한국인 유권자들의 반응이 당연히 나왔다. 한국계 유권자들을 노린 얕은 술책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 한국계 유권자들 대부분에게 뿌듯함이 먼저였다. 유력한 정치인이 한국의 제도를 잘 알고 있고,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전달이 되었다. 자신이 한국계 유권자들을 생각하고 있으며, 이들을 향해서 한글로 포스팅을 할 정도로 가까이 가려 한다는 의도도 나타냈다.

샌더스는 의료를 넘어서 샌더스는 미국인 생활 전반에 걸친 복지 혜택 확충을 주장해왔다. 한국계 이외에도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철폐 역시 그 일환에서 그가 꾸준히 추구해왔다. 이런 그의 신조와 주장을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도 하지만, 한국어 표기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버니 샌더스가 자신의 메시지를 한글로 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전역에서 버니 샌더스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한 계기는 2016년의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혜성처럼 등장하여,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이 기정사실처럼 되어 있던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후보로서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주로 젊은 층과 백인 주류가 아닌 소수 인종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런 경향에 맞춰 버니 샌더스는 경선 초기인 2016년 2월에 한글을 포함한 14개 언어로 “’나’ 아닌 ‘우리’”, 영어로는 “NOT ME, US”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미디어가 메시지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언어가 메시지’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전 한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인사 한 명은 대중 외교를 강조하면서 중국의 대학교에 가서 중국어로 강연을 했다. 유감스럽게 그의 중국어는 한 전공자가 ‘중국어라고 할 수 없다’라고 평가할 정도였지만, 중국 인민과 정치계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아들 조지 부시는 스페인어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 그의 정책들은 결코 중남미 이민자들에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스페인어로 이민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연설하는 자체로 그들의 표를 얻었다. 꼭 직접적으로 한국계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구애 활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버니 샌더스의 한글 포스팅은 사용 언어 자체가 강력한 의사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반전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반향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그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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