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인식 반응을 넘어선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인식 반응을 넘어선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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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지하철역으로 열차가 속도를 줄이며 들어온다. 한국처럼 열차와 대기 플랫폼 사이에 승객의 안전을 위한 스크린도어가 없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지하철역에는 속도를 줄이기는 했지만, 열차가 들어오며 바람도 함께 몰고 온다. 그 바람에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보다 먼저 반응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다. 플랫폼 기둥에 붙어 있는 사진 속의 차분히 빗어 내린 긴 머리의 여성이었다. 그의 머리가 바람에 날려 얼굴을 가리고 여러 방향으로 센 바람에 빨래가 펄럭이 듯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는 승객들을 보고 사진 속 여성이 약간 수줍음을 띄긴 했지만 환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넣어 머리를 쓱 다듬이 빗자 바람에 나부껴 헝클어졌던 머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화장품 용기 세 개가 브랜드와 함께 나타난다. 바람에 날려도 쉽게 엉키지 않고 복원시킬 수 있는 스웨덴 헤어케어 제품의 광고였다. 동작을 인식하는 키넥트(Kinect) 기술을 활용한 광고로 2014년에 집행되자마자 스웨덴을 넘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주변 환경의 변화나 사람들의 동작을 인식하여 그에 맞춰 반응하는 형식의 광고는 스웨덴의 지하철 광고가 최초가 아니었다. 어느 패션 브랜드는 옥외광고판의 모델이 날씨에 따라 의상을 달리하는 광고를 선보였다. 더운 한낮에는 민소매 탱크톱을 입고 있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면 그 위에 레인코트를 걸쳐 입고, 우산도 펼치곤 했다. 브리티시 에어웨이즈(British Airways)에서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에 설치한 옥외광고 속의 어린이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하늘에 비행기를 가리키면서 일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온 BA475편이네요’라고 말한다. 옥외광고판에서 200킬로미터 안에 그 비행기가 들어오면 반응하도록 한 것이었다. 브리티시 에어웨이즈는 ‘암스테르담에서 온 BA431’ 등 여러 편들을 지역에 맞춰, 인물도 바꾸어 가며 운용했다.

비행기뿐만 아니라 도로 위의 자동차를 인식하여 반응하는 광고 사례도 많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 공항에서는 공항 내 도로 입구의 광고판에 달린 카메라로 포르쉐가 들어오는 것을 인식한 후에 다음 광고판에서 ‘올해의 자동차 포르쉐’ 등의 포르쉐를 주인공으로 한 메시지가 나오도록 했다. 한국에서도 서울 올림픽대로에서 택배 차량을 포착하여 그를 대상으로 택배 기사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시하는 광고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운영하기도 했다. 요는 주변 변화를 감지하고 그에 반응하는 것 자체는 순간적인 재미는 있을지라도 그리 특출난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처음 얘기한 스웨덴 지하철의 헤어케어 광고는 이후의 반전이 있었다.

원래의 모델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거의 십 대 청소년으로 보이는 긴 머리 여성의 사진이 있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역시나 그 여성의 머리가 휘날린다. 승객들이 그 사진을 보고 놀라워하다가 즐거워서 사진을 찍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데 바람이 조금 더 거세지는 듯 머리가 더욱 심하게 날리더니 휙 날아간다. 가발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민머리의 소녀는 더욱 어려 보인다. ‘매일 암 판정을 받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라는 자막에 이어 어린이 암 환자를 위한 기부를 할 수 있는 번호가 뜬다. 광고를 집행한 스웨덴의 ‘어린이 암 재단’의 표시와 함께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가 다 빠진 모델의 신상이 나온다. 14살의 소녀이다.

스웨덴 ‘어린이 암 재단’에서는 어린이 암 환자가 매일 발생한다는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하여(To show the reality we face every day)’ 이런 반전의 광고를 기획하고 집행했다고 했다. 그들이 무겁게 말한 이 문구를 약간 가볍게 비틀어 말하고 싶다. 매일 다른 창작자들이 선을 보인 아이디어도 살짝 비틀어 새롭게 만들 수 있다. 곧 반전을 통한 새로운 충격을 주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겸임 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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