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혁신을 막는 인센티브와 성과주의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혁신을 막는 인센티브와 성과주의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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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부브카 (출처 https://worldathletics.org)
세르게이 부브카 (출처 https://worldathletics.org)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코로나19의 변종이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고 하더라도 올림픽은 진행되고 있다. 어떤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이번 베이징에서 누가 스타로 등장할지 주목된다. 확실한지 모르겠지만, 개인으로서 세계기록 경신을 가장 많이 한 선수라면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육상 장대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딴 세르게이 부브카를 꼽는다. 1963년생으로 1985년에 세계 최초로 6미터의 벽을 넘었고, 1993년 실내경기에서 6미터 15센티미터를 기록했는데, 이는 21년 동안 세계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다음 해인 1994년에 실외에서 세운 6미터 14센티미터는 26년간 세계 기록의 자리를 지켰다. 선수 생활 동안 참가한 대회에서 그는 35차례 세계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거의 대회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그를 두고 이런 말이 돌았다.

‘5센티미터 이상 더 높은 기록을 세울 수 있지만, 1~2센티미터 정도만 높인다.’

구소련의 국가 포상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대회에서 세계기록을 세우면 특별 상금을 주었다. 그런데 전의 기록을 깨기만 하면 주었지, 얼마나 높이 뛰었는가란 성적 자체에 대한 포상은 아니었다. 돈만 놓고 봤을 때, 굳이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높이로 뛸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기업으로 치면 조금씩 개선해도 되는데, 확 뒤엎는 식의 혁신을 꾀할 필요는 없었다.

“혁신을 원하는 집단에게 성과주의를 사용할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 등수를 매긴다는 것은 답을 정해놓았다는 의미다. 정답과 목표치를 정해놓고 보상을 주는 한국식 성과주의는 혁신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미래조직 4.0>(김성남 지음, 더퀘스트 펴냄, 2018) 46쪽

세계 5대 기초과학 연구소 중 하나라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를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이상 이끌었고, 현재는 이스라엘 과학재단의 의장을 맡고 있는 물리학자 다니엘 자이프만의 지적이다. 비슷한 경우를 학교와 회사에서 두루 경험했다. 혁신을 하자며 분임조 활동이나 부서별 제안을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를 통하여 엄청난 혁신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1차로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었다. 업무 성격 등의 구분 없이 분임조나 부서 당 몇 개 이상의 제안이나 개선책 등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2차로 내놓은 개수에 따라 순위를 매겨 상을 주었다. 그리고 연말에 우수 제안 등을 뽑았다. 당사자들로서는 똘똘한 제안으로 연말에 우수상을 받는 것보다 최소한의 하한선을 넘기고, 무조건 숫자를 많이 하여 상을 받는 데 중점을 두었다. 전체적인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우수작을 뽑는 데도 객관성이란 기준이 강화되면서 수치화가 중요해졌다. 그때까지의 관행과 방식에 기초하여 점수 산정 방식이 만들어지고 적용되었다. 박스를 깨거나 그 밖으로 나가는 혁신을 고안하라면서 정작 평가는 철저하게 박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초과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가 위의 말을 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초과학 연구보다 단기간에 논문을 양산해낼 수 있는 쪽을 학교 당국은 선호한다. 대학 평가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기업으로 치면 라인 전체의 생산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혁신보다는 라인에 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일을 찔끔 바꾸는 게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격이다. 그러니 진짜 혁신이 일어나기 힘들다.

덴마크인가 핀란드에서 외국어를 재미있게 가르친다는 얘기를 들은 처가 말했다. "우리도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다.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평가에 거의 모든 초점이 맞춰지면서 재미있는 방식을 실행할 수 없다." 외국어 수업 만이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시와 소설이 정말 재미있어요. 그런데 왜 이런 것을 이렇게 재미없게, 재미가 떨어지게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르기야 하겠는가. 바로 평가 때문이지. 시험에 맞춰 정해진 답을 외워야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혹시라도 실수할지 모르니까, 눈 감고도 정해진 답을 찍을 수 있게, 똑같은 문제를 풀고 풀고 또 푸니까 그렇지.

마케팅 프로그램의 평가에서도 ROI가 잣대로 강력하게 자리 잡으면 창의성을 까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 곧 invest를 줄여서 결과 return이 작더라도 수익률 자체를 높이는 식으로 진행한다. 결과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으니, 투자도 크게 하자는 소리는 묻혀버릴 확률이 크다. 전자가 확률이 높다는 게 이유이다. 과거에 기초한 그 확률이란 게 정답으로 기능한다. 거기서 무슨 창의성이 발휘되겠는가. 창의성을 위해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창의성을 꺾어버리는 반전이 일어난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초빙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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