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어떤 경찰을 원하는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어떤 경찰을 원하는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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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들이 시가전을 벌일 때, 빗발치는 총탄에도 끄떡없이 굉음을 울리며 도로를 누비는 장갑차가 있다. ‘근접전용 전장 차량’으로 ‘Armored Personnel Carrier’라 불리는 병력 수송 장갑차 M113이다. 1960년 처음 등장하여 베트남 전쟁부터 이름을 떨쳤고, 세계 주요 군대의 장비로 자리 잡았다. 이 M113이 주연으로 등장한 동영상이 있다. 록밴드 도프(Dope)의 빠르고 공격적인 비트와 함께 해적 깃발에 주로 쓰이는 해골 마크가 반짝거리더니, 옆면에 ‘경찰특공대: 도라빌 경찰(SWAT: Doraville Police Department)’라고 쓴 M113가 나타난다. 차량이 서고 격렬한 전투 장면에서 흔히 보이는 연기가 화면에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부터 몰려와 장갑차를 뒤덮는 가운데 중무장한 이들이 장갑차에서 나와 사방에 대고 위협적으로 총을 겨누더니 바로 다시 차에 올라 떠난다. 다시금 해골 마크가 나타나고 록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장갑차는 승용차와 농장용 트럭 십여 대가 마주 보고 서 있는 한적해 보이는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미국 조지아 주 도라빌이라는 인구 1만 명 남짓한 동네 경찰이 지원자 모집 겸 홍보용으로 만든 영상이다. 일 년에 한 건의 살인 사건도 없이 넘어가는 때가 많은 동네에서 경찰이 저런 장갑차를 타고 출동하는 일이 얼마나 벌어질까. 게다가 록 백드의 이름이 경찰과는 거리가 멀게 ‘마약’을 뜻하고, 연주 곡명은 폭력과 욕설을 적나라하게 담은 ‘Die Motherfuxxer Die’이다. 이 영상을 보고 가슴이 뛰어 지원한 이라면 경찰이 되어 이런 장면을 한 번 제대로 펼쳐보고 싶지 않을까. 한국으로 치면 면 소재지 같은 곳의 경찰에 전투용 장갑차가 있다는 게 터무니없게 느껴지겠지만, 실제 미국의 경찰들은 장갑차 같은 중장비를 포함하여 전투용 무기를 갖춘 곳이 많다. 아예 정부 차원에서 1997년에 남거나 처분해야 하는 장비를 경찰에 넘겨주자(hand-down)는 ‘1033 프로그램’이란 걸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물이라고는 농장 옆의 연못이 고작인 동네의 경찰서가 수륙양용 장갑차를 가지고 있고, 인구 3만 명 정도 되는 도시의 경찰서 앞에 군용 탱크가 포를 높이 쳐들고 서 있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참전 경력이 있는 군인들이 퇴역하여 경찰에 합류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경찰이 나오는 다른 동영상이 있다. 처음은 비슷하게 경찰특공대 같은 무장 병력이 나오나, 바로 그들 사이로 아시아계 여성 경찰이 누군가를 쫓아서 뛰어간다. 역시 뜀박질을 하던 마오리족 경찰은 보행기에 의지해서 건널목을 천천히 지나던 노인을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안전하게 다 건너도록 보살핀다. 운동하는 것도 도와주고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경찰도 나오다가 처음에 나온 여성 경찰이 쫓던 이를 궁지에 몰고는 소리친다. “그거 놔(Drop it)!”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보더콜리 개 한 마리가 입을 벌리며 핸드백을 땅에다 떨어트린다. 누군가의 핸드백을 물고 달아난 개를 뒤쫓은 것이다. 뜨거웠던 추격전이 끝나는 순간에 자막이 뜬다. “경찰이 될 만큼 다른 이들을 보살필 수 있나요(Do you care enough to be a cop)?” 뉴질랜드 경찰의 채용 광고 영상이었다.

뉴질랜드야 원래 평화로운 나라이고, 미국은 범죄율이 높다고 하니 경찰 채용 광고도 그렇게 달라야 하는 걸까. 지원자들이 그리는 경찰의 모습 자체가 달라서 그런 차이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범죄를 차치하고라도 미국 경찰의 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 데는 영상과 어우러진 정도 이상의 전투용 장비 탓도 있을 것이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보통 사람이라도 총이나 칼을 쥐여주면 쏘거나 휘두르고 싶어진다. 미국 경찰 하나가 방탄조끼를 거부하며 이런 말을 한 걸 기억한다. “방탄조끼를 입으면 제대로 기능할까 하는 불안감이 더 커진다. 그래서 상대를 먼저 제압하겠다며 더욱 공격적으로 나가게 된다.”

한국에서 여성 경찰이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를 피해서 달아났다느니 하면서 경찰이 힘으로 피의자를 제압하지 못한다고 비난 여론이 일어난 적이 있다. 경찰 채용 시험에 체력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다. 경찰의 여러 역할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정한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길 바란다. 힘은 더 큰 힘을 부르는 반전으로 귀결되며 악순환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초빙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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