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공장’ 사람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공장’ 사람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4.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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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전에는 제조업체에서 커뮤니케이션 일을 했는데, 이제는 커뮤니케이션 기업에서 제조 공장 일을 하고 있네요.”

광고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내는 게 어떠냐는 한 선배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첫 직장이었던 전자 회사에서 홍보 부서에 있었다. 사람들 만나고 전화로 이야기하며 달래고, 행사 프로그램이나 영상물 아이디어를 내고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도록 도모하고 실행하는 일을 했다. 이후에 자리를 옮겨 이전에는 조사팀이라고 불렀던 광고 회사의 마케팅팀으로 갔다. 소비자 조사의 보고서부터 온갖 종류의 보고서를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팀의 다른 친구들이 자조적으로 우리는 ‘보고서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출처 learnbook.org
출처 learnbook.org

‘커뮤니케이션 공장’이라고 자신들의 일자리를 표현하는 이들을 보고 이전의 본연과 엇갈렸던 직장의 경험들이 생각났다. ‘공장’이라고 하면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직공들이 그 옆에 서서 부품을 끼우며 조립 작업을 하는 광경을 떠올린다. 찰리 채플린의 명작 영화인 <모던 타임스>에서 쉴 새 없이 나사를 돌리다가 나사 모양의 둥근 것만 보면 멍키스패너 같은 것으로 돌리려 하는 장면을 연상한다. 전자 회사에서 연수 과정 중 실제 조립 라인에 서서 일한 적이 있었다. 라인 속도가 빨라지면서 나사를 옳게 끼우는지 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자동으로 손이 움직이고 있었고, 어느 제품을 만드는 것인지도 잊은 채 나사만 박고 있었다. 만드는 제품과 그를 만드는 노동에서의 소외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중간에 라인이 멈추며 갖는 몇 분간의 휴식 시간만 기다렸다. 휴식을 알리는 신호가 나면 사람들은 모두 한숨 한 번 쉰 다음 화장실로 가기 바빴다.

커뮤니케이션 공장의 사람들은 화장실도 가지만 담배 피우러 가기 바쁜 이들도 많단다. 그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여성인데, 흡연자 비율이 사회 전체 평균보다 곱절 이상 높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에게 저임금에 잠이 오지 않는 약까지 먹여가면서 하는 중노동이 행해지던 봉제 공장이 이제는 커뮤니케이션 공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바로 ‘콜센터’였다. 그래서 1970년대의 ‘공순이’가 21세기로 들어서는 ‘콜순이’가 되었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정부 법령이나 공식적인 데서는 ‘콜센터 상담사’라는 용어를 쓴다. 채용 모집 공고를 할 때는 ‘텔레마케터’라는 단어가 잘 통한다고 한다. ‘상담사’와 ‘마케터’라는 단어들은 성 중립적(gender neutral)이다. 그리고 육체노동과 거리가 있다는 걸 강조하는 듯하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의 효과를 기도하는 테일러리즘은 자동 콜 분배기와 최고 효율을 추구하는 응대 매뉴얼로 압박을 하고, 한자리에 붙박아 매어 둠으로써 몸 곳곳에 이상을 가져온다. 공장에서 생산물의 개수를 따지듯 커뮤니케이션 공장에서는 ‘콜 수가 인격’이라고 한다. 산출물은 없이 ‘감정의 쓰레기장’이 되며 자신들은 ‘일회용 배터리’로 쓰곤 버려진다고 한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세계 최대의 커뮤니케이션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곳은 인도(India)이다. 그곳에서 쓰이는 용어들도 콜센터가 어떤 곳인지를 비유로 나타내고 있다. 여성들이 노동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철저하게 수동적이고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한다고 해서 ‘가정부(housekeeper)’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앞에 ‘전자(electronic)’라는 수식어가 붙어 ‘전자 가정부(electronic housekeeper)’라고 한다. 사이버 시대의 대표적인 밑바닥 노동자(proletariat)라고 해서 ‘사이버테리아트(cyberteriat)’란 신조어도 나왔다. 거기에 본사는 영국이나 미국 등 제국주의 시절의 맹주들에 있고, 콜센터만 인도에서 운영한다고 해서 콜센터 종사자들을 ‘식민지의 혀’라고도 부른다. 그 옛 시절에 중국이나 인도의 육체노동자를 의미하던 ‘쿨리(coolie)’를 가져다가 ‘사이버 쿨리(cyber coolie)’라는 말도 잘 쓰인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 공장’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만든 반전은 그와 연관되어 나온 단어들로 현대의 아픈 구석을 드러낸다. 여성들의 저임금 고강도 단순노동이라고 정의해버린 늪에서 나와 건강하게 정당하고 존중받는 노동의 의미가 담긴 표현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사람들의 시각과 태도가 먼저 바뀌어야겠지만, 용어가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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