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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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예전 학교 다닐 때 한 반 전원이 엎드려뻗쳐 한 상태로 줄을 지어 있고, 몽둥이를 든 선생님이 한 명씩 엉덩이 타작을 하며 자기 쪽으로 다가올 때와 같은 공포가 느껴진다고 했다. 요즘 코로나19 오미크론 확진자가 주위에도 나타나면서 자신의 차례가 다가온다는 느낌을 한 친구가 그렇게 비유했다. 그 말이 화근이었을까. 얘기를 들은 직후부터 기침이 나왔고, 가래가 생겼다. 집에서는 처음 음성이 나왔으나, 이틀 후까지 증상이 계속되었고 결국 자가진단 양성 후에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통해 국가 인정 확진자가 되었다. 가족들도 모두 양성으로 나왔다. 한 가족의 연대의식을 강하게 느끼며 단체 격리 생활에 들어갔다. 일주의 격리가 끝나면 1박 2일이라도 여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원래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 아니었는데,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난 2년간은 강제된 금지로, 이제는 여행 자체가 우리를 떠나버린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상 상황이 길게 가지 않으리라고 했다. 원산지 이미지를 들어 코로나19 자체가 잠깐이면 끝난다고 했다. 예상대로 풀리면 다시 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고 했다. 오래도록 각지를 돌면서 피로가 쌓인 가방을 비롯한 여행 도구에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짐짓 너그러운 척했다. 빈 총 쏘듯 괜스레 여행 가방을 쌌다가 풀기도 했다. 외국으로 가지는 못해도 바다 쪽으로 휘이 나가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오는 몇몇 항공사의 의사(疑似) 해외여행 상품으로 달래기도 했다. 흉내를 낸다고 갈증이 풀릴 수는 없는 법. 사람이 여행을 어떻게 하지 못하자, 여행이 주체가 되어 우리의 곁을 떠나버렸다. 코로나19 이전이면 여름휴가가 정점에 달했을 8월의 첫 주가 지나며 기다림에 지쳤는지 여행이 사람을 떠났다.

“처음으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

짧은 여행이라도 떠나자는 말에 2020년 8월 6일 선을 보인 아시아나 항공의 광고가 떠올랐다. 마스크를 끼고 일하고, 영상통화를 하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본다. 일상처럼 때가 되면 가던 여행의 존재가 더욱 크게 와닿았다. 우리는 그대로 그 자리에 고정이 되었고, 결국 여행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목적어로 주어인 우리의 부림을 받던 여행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결국 일상이 담을 수 없었던 여행이 떠나갔다.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었다. 이런 도치를 본 적이 있다.

‘허리 휜 껌이 다가와 할머니를 이백 원에 팔고 감’

이 칼럼에서도 소개했던 함민복 시인의 시 <후보선수> 중 한 대목이다. 씁쓰레한 껌과 할머니의 뒤바뀜이 남긴 여운 속에서 멍하게 이 시구(詩句)에 짓눌린 채로 앉아 있었다. 껌이 나까지도 세상에 팔아버리고 떠난 것 같았다.

시계의 시간이 늦어질 때, ‘잃는다(lose)’란 동사를 쓴다. ‘시계가 한 시간 늦어졌다’는 ‘The clock lost an hour’라고 옮긴다. 그런데 미국의 문화연구가인 그래프턴 터너는 이 관계를 뒤집어 ‘시간이 시계를 잃었다(The hours have lost their clock)’며 복고의 향수에 빠져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표현했다. 늦든 빠르든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흐름이 그를 표시하는 시계와 분리되었다.

평소 성격은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는 영국의 코미디 배우 피터 셀러스는 자신의 차를 파는 광고를 이렇게 냈었다.

“명품 차량이 자신의 주인을 처분하기를 희망합니다.”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한 명품 차량의 답답함이 결국 그렇게 거꾸로 차량이 주인을 바꾸도록 나서게 했나 보다. 서로 다시는 대면하지 않는 각자의 길을 갈 명품과 셀러스와는 달리 아시아나 항공의 광고는 그래도 희망을 얘기한다. 시계가 제대로 된 시간을 찾는 날을 얘기한다.

‘모든 여행의 마지막은 제 자리로 돌아왔듯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일상 속 소중한 여행의 가치를 주어와 목적어의 전복으로 마치 무위(無爲) 도(道)를 설파하고는 곧 돌아올 것이란 희망까지 전한 아시아나 광고는 두 달 만에 2천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감동과 함께 여행에 대한 갈증을 잠시나마 풀어주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 기다림에 지쳤는지, 광고 후 1년 반 후인 2022년 2월에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합병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아시아나항공이 떠났다.

 


박재항 한림대학교 초빙교수, 대학내일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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