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을 꼭 배워야 할까?

코딩을 꼭 배워야 할까?

  • 박경하
  • 승인 2023.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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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OBU Agency / Unsplash
사진: KOBU Agency / Unsplash

“코딩을 꼭 배워야 할까요?”

어느 강연장에서 중학생 자녀를 둔 한 어머님의 질문이었다. 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럼요, 우리도 여전히 영어를 못하지만, 최소 6년 이상은 다들 배웠잖아요” 농담으로 느꼈는지 좌중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내 딴에는 꽤 진지했다.

내가 최소 6년 이상 영어를 배우고 난 뒤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적어도 영어를 두려워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는 것’ 말고 ‘영어’ 그 자체 말이다. 나는 영어 기사를 접해도 웬만하면 사전을 찾아보지 않는다. 모든 단어를 알아서가 아니라 몇몇 단어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모한 착각 속에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영어 사전보다 국어 사전을 더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영어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어도 왠지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단한 착각이 있다. 한때 일본 드라마에 푹 빠져 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트남어, 태국어 등 전혀 접해보지 않은 언어들은 다르다. 나에게 그들은 언어나 문자가 아니라 동굴 벽화에 가깝다.

나는 코딩을 배워야 하는 최소한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코딩을 배워서 프로그래밍을 잘하게 된다면 물론 더없이 좋겠지만, 코딩은 물론, 코딩으로 이뤄지는 세상에 대한 무지나 거부감, 두려움을 없애는 것도 앞으로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코딩(Coding)’이라는 것이 뭘까? 코딩에 앞서 ‘코드(Code)’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코드는 ‘암호’라는 뜻이 있는데,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Language)다. 그래서 코딩(Code+~ing)은 “코드, 즉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보면, 마케팅(Market+~ing)도 “시장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고 브랜딩(Brand+~ing)은 “브랜드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는 얕은 정의가 가능하다.

또,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통상 인공어(Artificial Language),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자연어(Natural Language)라고 구분하는데, 사람이 인공어를 이용해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컴퓨터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걸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고 부르며, 인공지능의 지향점은 사람들이 말하거나 온라인에 올리는 글들, 즉 자연어를 컴퓨터가 스스로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흉내 내는 데 있다.

그래서 요새 핫한 챗GPT처럼 인공지능이 대중화되어서 누구나 집에 반려로봇 하나쯤 가지게 되는 시대가 오면, 예를 들어 지금처럼 코딩 작업을 통해 웹사이트를 만드는 대신, 로봇에게 자연어로 “웹사이트 만들어줘”라는 명령을 내리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궁금해진다. 자연어로 인공지능과 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굳이 IT 업계에서 일하지도 않을 내가, 지금 애써 코딩을 배워야 할까? 나는 여기에도 단호하게 “배워야 한다”라는 쪽이다.

이유는, 앞서의 “낯설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도 있으나, 시대가 바뀌는 시점에는 조금씩이라도 다방면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있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경험은 의외로 나의 직무와 전혀 다를 때, 예상 가능한 범위에 없을 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데이터 분석이나 마케팅 분야와 전혀 무관한, 대학생 때 장난삼아 익혔던 사진 편집이나 영상 편집 같은 기술이 의외로 먼 훗날 여러 기회를 만들어 줬다. 유튜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질문을 조금 바꿔서, “코딩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까?”라고 묻는다면 나도 조금은 회의적이긴 하다. 어느 학문이나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모든 사람이 하루 한 시간씩 코딩을 연마해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바램은, 무조건 코딩 자체를 가르치는 것보다, 코딩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 발굴에 집중하면 어떨까 싶다. 4차산업혁명의 기술적 화두였던 빅데이터, 인공지능, 메타버스, 증강현실, IoT, 전기차, 자율주행, 로봇 등등에 대한 실체는 이미 많은 부분 드러났다고 본다. 당장 구현되고 대중화되지 않았더라도 진화 방향은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정도는 된 것이다. 지금은 어쩌면 미래 예측이 가장 쉬운 시점일지도 모른다.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시점은, 예상 가능한 만교육큼 미래가 성큼 다가와 있는 시점일 테니까.

기술적 진화 방향에 대한 예상이 가능하다면, 그 기술을 구현하는 사람 못지않게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빅데이터 분야도 처음에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로 출발했고, 이후 정제, 가공 등 데이터를 어떻게 분해하고 다듬는지에 대한 기술로 진화하다가, 최근에는 ‘문해력’, 즉 읽고 이해하는 능력, 해석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결국에는 ‘인문학’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니까 한쪽 역량이 우위인 것은 아니다. 양립과 공존, 균형이 중요하다.

지금의 코딩 교육은 영어 교육과 참 많이 닮았다. 둘 다 ‘언어’라는 특성 때문인지 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보다는, 혹시 그 자체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은지 반추하게 된다. 지금은 새로운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기술과 기술을 어떻게 연결하고, 그를 통해 어떤 다양한 것들을 창조할 수 있는지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하 엠포스 빅데이터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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