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과 가치의 반전
가격과 가치의 반전
  • 박재항
  • 승인 2020.01.28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해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와서 인턴 근무를 하던 친구가 정부의 청년주택지원에 힘입어 시내에 제법 쓸 만한 자취방을 얻었단다. 자기의 대학 동기나 고향 친구 중에 처음으로 서울에 숙소를 스스로 마련했다며 스스로 대견해 했다. 친구들을 불러 한동안 집들이를 하더니, 함께 일하는 우리들도 초대했다. 대충의 집 위치를 물어보자 다른 친구가 자신의 친한 친구가 사는 동네라 아주 잘 안다고 했다. 그냥 말로 위치를 설명해주는데, 버스정류장에서 재래시장 입구 지나는 것까지 잘 따라가던 친구가 딱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시장 지나서 올리브영이 있거든요. 그것 끼고 좌회전해서 들어오시면 돼요.”

듣고 있던 친구가 물었다. “올리브영이 거기에 있다고? 몇 년 동안 매주 드나들다 시피 했는데 올리브영은 본 적이 없어.” 집들이를 하겠다던 친구가 말했다. “제 친구들, 여자애들에게는 올리브영을 중심으로 얘기하는 게 제일 잘 통해요.” 다른 친구가 말했다. “예전에 남자 고등학생들은 PC방들을 기준으로 길을 가르쳐주곤 했는데요. 남자 대학생들은 그런 역할을 하는 게 무엇일까요?”

젊은 여성들이 방을 구할 때 올리브영이 가까이 있는 소위 ‘올세권’ 여부를 따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남자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자기는 다이소가 근처에 있어야 한다며, ‘다세권’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따세권’을 따진다고 했다. 서울시 공유자전거인 따릉이 거치대가 지근거리에 있는지 본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것들이 다르다. 그리고 같은 건물이라도 누구에게는 랜드마크일 수가 있는데, 다른 이는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맹인은 촉각으로 물건의 크기를 결정한단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맹인에게 찰흙으로 인간을 빚으라고 하면 손을 가장 크게 만든다고 한다. 실제 피부감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 중 손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또 전기스탠드를 만들라고 하면 전구를 가장 크게 만든다. 불을 켜면 전구가 따뜻해지는데 이 따뜻한 느낌이 그들에게 가자 뚜렷한 감각으로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게 다르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개인적 가치(Personal Value)"라는 작품이 있다. 그림 속의 사물들의 크기는 우리의 상식과 어긋난다. 머리빗이 침대보다 크고, 몽둥이보다 더 큰 성냥개비가 와인 잔보다 작은 장롱 위에 놓여 있고, 쿠션소파만한 비누가 바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제목에 맞춰 개인이 갖고 있는 각각 사물의 가치에 따라 크기를 매겼다고 보통 해석을 한다. 크기라는 고정된 객관적 지표가 개인의 경험이나 관점과 생각에 따라 변화하여 나타난다.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표현하면서 일종의 반전을 기도한다. 그 반전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반전이 완성된다. 마그리트 그림의 ‘크기’라는 것을 ‘가격’이라고 바꾸어보자. 가격과 가치는 다르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이런 말을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든것의 가격은 알지만 그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Nowadays people know the price of everything and the value of nothing)” 같은 가격이라도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 마케터들이 꾀하는 반전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개인적 가치"
르네 마그리트의 "개인적 가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