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반복 속의 반전 - 올해 슈퍼볼 최고의 반전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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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2.10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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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hog Day 포스터

1993년에 개봉되어, 한국에서는 ‘사랑의 블랙홀’이라고 제목이 나온 'Groundhog Day' 영화를 열 번은 본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열 번을 본 것은 아니고, TV에서 방영할 때나 비행기에서 기내 영화로 상영되는 것을 드문드문 본 것까지 합쳐서 그렇다. 아들들과 함께 본 경우도 많았다. 매년 2월 2일 성촉절(Groundhog day)가 반복되는 루프홀에 빠진 주인공은 1960년대의 유명 남년 혼성 듀엣인 '소니 앤드 쉐어(Sony &Cher)'의 ‘I got you babe’ 노래가 라디오를 통해서 나오는 가운데 잠을 깬다. 아들들은 그 노래 멜로디만 들으면 까르르 웃곤 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모든 게 불만이고, 그래서 늘 찡그리고 다니며 귀찮아하면서 무신경하기 짝이 없는 기상캐스터이다. 한국으로 치면 경칩과도 같은 성촉절 행사로 시골 마을에 방문한다. 몇 해째 계속 취재했던 행사라 대충 빨리 끝내고 가려고 한다. 그런데 폭설로 길이 막혀서 하루를 더 머물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다시 성촉절 당일로 똑같은 날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덩어리인 주인공은 무한반복의 루프홀, 곧 한국에서의 제목처럼 블랙홀에 빠져서 몸을 마구 굴리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기행을 일삼지만 계속 더 깊은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과 같다. 한국의 제목에서 나오는 ‘사랑’에 빠져서 블랙홀에 선하게 적응하는 과정을 주인공은 거치게 된다.

이번 슈퍼볼 광고에서의 주인공은 다르다. 블랙홀에 빠져서 가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을 즐기게 된다. 그 계기를 만들어준 게 바로 아웃도어 활동에 맞게 나온 지프 글래디에이터(Jeep Gladiator) 자동차이다. 길가에 세워진 지프 글래디에이터를 보자마자 주인공은 “저건 다른데”라고 하면서 성촉절의 상징인 그라운드호그, 곧 마못을 마을 시장에게서 빼앗아 그를 데리고 지프 글래디에이터를 타고 야외로 나가서 맘껏 즐긴다. 다음 날도 지프 글래디에이터를 타고 즐길 생각에 기쁘게 똑같은 날의 반복을 맞이한다.

광고를 보자마자 아들들에게 올해 슈퍼볼에서 '내가 뽑은 최고의 광고‘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너무 올드패션드인가‘라고 덧붙였더니 한 아들이 ’고전이죠'라고 맞장구를 쳐줬다. 이 영화는 실제 고전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처음 개봉했던 1993년의 이 영화는 평범한 로맨틱 코메디라는 평가를 받으면, 수익이 7천만 달러에 그쳤다고 한다. 그런데 반복되는 일상, 인간의 잠재 욕구, 성악설과 성선설까지 연결되면서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평가가 이루어져 영화 자체가 교육학과 사회학의 교재로도 쓰일 정도로 고전 대접을 받고 있다. 실제 2006년 문화적, 역사적, 심미적 의의가 있는 영화를 영구 보존하는 National Film Registry의 목록에 올라갔고, 2018년에는 뮤지컬로까지 제작이 되었다. 영어에서 ‘groundhog day’가 성촉절 행사보다는, 반복되는 일상을 표현하는 숙어처럼 자리를 잡았을 정도이다.

광고는 이렇게 이제 고전이 된 그 영화의 핵심을 되살려냈다. 'No day is the same in a Jeep Gladiator.‘이란 카피가 영화의 내용과 제품의 속성과 잘 맞아 떨어졌다. 실제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빌 머레이와 역시 영화에 출연자들이 나선 광고에서, 같은 날이 반복되지만, 지프 글래디에이터와 함께라면 어떻게 다른지 표정부터 잘 보여준다. ’There's Only One'이란 슬로건과도 끼어 맞춘 것처럼 어울린다. 잘 알려진 영화의 내용이 있었기에 더욱 멋진 반전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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