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46세의 무명 흑인, 조지 플로이드 (George Floyd)의 죽음이 남긴 일

[신인섭 칼럼] 46세의 무명 흑인, 조지 플로이드 (George Floyd)의 죽음이 남긴 일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06.10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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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말 코로나바이러스가 차차 가라앉기 시작한 미국에 또 다른 참변이 일어났다.

46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붙잡혀 수갑을 채운 채 보도에 뉘워져 경찰에 의해 목이 눌려 죽었다. 5월 25일, 수요일, 저녁 8시가 조금 지나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있은 시간은 8분 46초였다. 미국 뿐 아니라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유럽 여러 도시에서 경찰 폭력으로 죽은 플로이드 살인 사건에 항의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미국에서 시위는 폭동이 되었고 더러는 상점 약탈로 변하기도 했다. 질서를 잡기 위해 워싱턴 백악관 주변에서는 심지어 주 방위군을 소집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하 벙커로 자리를 옯기기도 했다.

워싱톤에 있는 킹 목사 기념비 앞에 모인 군중이 들고 있는 피켓의 글 가운데는 이미 널리 알려진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합니다)” 그리고 “RACISM ISN'T BORN. IT'S TAUGHT(인종 차별이란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다)는 카피가 있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비와 피켓 문구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비(출처 픽사베이)와 피켓 문구

사건이 일어난 뒤 4일 만에 나이키는 명 카피로 남을 만한 ”For Once, Don't Do It." 로 시작하는 60조 광고를 자사 홈페이지에 실었다. 아마 “제발, 이러지는 마세요”라고나 옯길 수 있을까. “미국에 문제가 없다는 체 하지 마세요”로 시작해 일곱 가지 하지 말라는 말을 이어갔다. 아무런 사진, 그림, 일러스트레이션도 없이 카피만으로 된 일종의 의견 광고들이 나왔다. 맥도날드는 경찰의 폭행, 총기 폭행으로 죽은 미국 흑인 일곱 사람의 이름을 적은 광고를 싣고 나서 뒤이어 “They were all one of us." 즉 ”이들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라는 광고를 실었다.

맥도날드 광고 캡처
맥도날드 광고 캡처

세계 2위 광고주인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회사인 유니레버 계열 아이스크림 회사 Ben & Jerry는 한 발 더 나갔다. ”WE MUST DISMANTLE WHITE SUPREMACY", “백인우월주의를 타파합시다“는 주장으로 인종차별의 밑바닥에 깔린 의식에 도전하고 있다.

Ben & Jerry 광고
Ben & Jerry 광고

더욱 주목할 일은 영국 서부에 있는 인구 6만의 오랜된 도시 브리스톨(Bristol) 시에서 일어났다. 17세기 상인이자 정치인이며, 수많은 자선사업에 돈을 기증한 에드워드 콜스톤 (Edward Colston. 1636 - 1721)의 동상이 밧줄에 끌려 넘어져서 물속으로 던져졌다. 1895년 그가 죽은 지 174년이 지난 해에 그의 많은 자선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동상이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씻기 힘든 흠이 남아 있었다. 그가 한 여러 사업 가운데는 노예 장사가 있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돈을 노예 장사롤 벌었는지는 모른다. 콜스톤의 업적에 관한 논의가 다시 떠오른 것은 1990년대 이후였다. 그러다가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죽인 경찰의 폭행 사건이 터진 것이다. 영국 브리스톨 시의 역사상 뛰어난 자선사업가가 저지른 노예 무역이 불씨가 되었다. 그가 사다 판 노예 가운데 일부는 미국으로 팔려갔을 것이기 때문에 플로이드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콜스톤이 죽은 1721년을 기준하면 줄잡아도 300년 전의 일이다.

브리스톨 시 지도와 콜스톤의 동상. 잡혀 온 100명의 노예를 상징하는 100명의 조각이 깔려 있다.
브리스톨 지도(출처 구글맵)와 콜스톤의 동상(출처 Stand Up Racism 페이지). 잡혀 온 100명의 노예를 상징하는 100명의 조각이 깔려 있다.

콜스톤의 동상 파괴에 대해 영국 수장 보리스 존슨은 인종 차별의 부당성과는 별도로 동상의 불법적 철거는 범법 행위라고 말했다. 흑인 출신인 브리스톨 시장은 콜스톤의 동상은 “모욕“이라 했다. 그러나 이 동상은 다시 회수해서 아마도 박물관에 보존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무명의 힘없는 흑인 남성, 46세의 조지 플로이드는 경찰의 살인 행위로 죽었고 이제 그가 자란 고향 땅 휴스톤에 있는 어머니 무덤 옆에 묻혔다. 한때 미식 축구선수였던 그의 꿈은 미국 대법원 판사가 되어 미국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에서도 200여개 도시에서 항의와 추모의 물결이 일어났다. 브리스톨 시 곳곳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자선사업가이며 노예 상인인 콜스톤의 동상을 300년 뒤에 무너뜨린 플로이드의 이름은 길이 남을 것이다. (물론 브리스톨 시는 "Stand Up to Racism"이란 인종차별과 싸워온 단체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Stand Up to Racism 페이스북 페이지

그 싸움 가운데는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이 모든 용서 못할 범죄 행위와 그 수치스러운 일을 샅샅이 캐내어 온 세계가 볼 수 있게 자유로이 보도할 수 있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들어 있다. 조선일보 2020년 6월 2일 1면의 사진이 주는 시사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2020.6.2. 기사 1면

신인섭 (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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